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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Dec 04. 2019

딸. 혹은 웬수.

 마지막 근무일에 엄마 집으로 갔다. 금요일 밤이었다. 첫날은 피곤해 일찍 잠을 청했고 이튿날 밤, 엄마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조심스레 입을 뗐다.

 “엄마. 사실 나 고백할 게 있어.”

 “뭔데?”

 “이게 좀 빅뉴스인데.”

 “그러게, 뭔데?”

 “나 회사......”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고개를 반대로 돌려 시선을 피하려다 용기 내어) 그만뒀어.”

 “뭐어?”

 “(멋쩍게)헤헿......”

 “하......”

 깊은 한숨소리 후 정적.



 그렇다. 선 퇴사 후 보고를 시전 한 것이다.

 “언제?”

 “어제. 어제가 마지막 날이었어.”

 “참 내...... 기도 안 차네.”

 중학생 때부터 내 대소사를 일방적으로 통보받아온 엄마는 진력이 난 듯한 반응이었다.

 “이번엔 나도 미리 말하고 싶었어. 근데 카톡으로 이야기하면 서로 감정이 상할 것 같았고, 통화하기엔 뭔가 아쉬웠어.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도 집에 올 시간이 있어야 말이지.”

 “언제 결정한 건데? 지난번에 왔을 땐 괜찮았잖아.”

 ”9월 중후반쯤 팀장님한테 얘기했으니까 결심한 시기는 얼마 안 돼. 그렇다고 갑자기 덜컥 그만둔 건 아니야. 오랫동안 이 일이 나한테 맞나 고민했었어.”

 “지금까지 잘 다녔잖아. 좀 더 참아보지 그랬어.”

 “엄마도 우리 회사 좋아하지만 나도 정말 좋아해. 근데 일이 너무 많은 건 사실이고, 이젠 힘에 부쳐. 몸이 힘든 것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까지 망가졌었어.”




 감정이 망가졌다. 엄마에겐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자주 찾아왔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숨은 턱 막히고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조차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각자도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냈기 때문이다.

 내 불안정한 상태를 이미 경험해본 엄마는 알겠다는 듯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엄마를 안심시킬 수 있을 만큼 적확한 미래를 설계해둔 게 아니라서 대략의 밑그림만 설명해줄 수 있었다.

 “일단 친구랑 지방으로 내려갈 거야. 거기서 농사짓고 집도 지을 거야.”

 엄마는 다시 한번 기막혀했다.

 “어째 이렇게 극단적이냐. 차라리 그냥 좀 쉬어. 농사는 무슨 농사야. 농사가 쉬운 줄 알아?”

 “친구 부모님께서 유기농으로 농사짓고 계셔. 우리가 내려가 살겠다고 하니 남는 땅을 조금 주시겠대. 진짜 감사한 일 아냐? 우린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지 않을 정도로만 농사 지어볼 생각이야.”

 “집은 어떻게 짓는데? 돈이 어디 있어서?”

 “큰돈 들이지 않고 집 짓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시도해보려고.”

 엄마는 단지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 나를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 하는 듯 보였다.

 “그럼, 돈은 어떻게 벌 건데?”

 막다른 질문에 다다랐다. 그건 말이죠

 “가서 찾아봐야지.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우리 힘으로 해내는 것이다. 씨앗을 심고 수확하는 일, 나무를 잘라 책장을 만드는 일처럼.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늘려가다 보면 점점 더 많은 일이 가능해질 것이고, 결국 우리의 생활환경을 우리 손으로 일구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엄마. 나는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해. 그래서 같은 시기에 뭔가를 같이 시작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친구도 나도, 혼자였으면 막막하기만 했을 텐데 지금은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우린 젊고 건강하잖아. 뭔가를 시도하기에도, 실패하기에도, 이보다 좋은 때는 없다구.”




 엄마는 결국 나의 농촌생활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앞으로 내게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수용의 자세. 마음먹은 일은 결코 굽히는 법 없는 딸을 둔 엄마의 기지였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잠결에 빠져들기 전, 엄마는 내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딸. 많이 힘들었구나.”

 다소 생경한 경험이었고







 나는 혼자서 결코 살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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