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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Aug 25. 2022

월급이 입금되었습니다.

 따끈한 월급날인 오늘, 나는 화끈하게 퇴사했다. 어쩌면 매월 같은 날 비슷한 숫자가 따박따박 통장에 입금되어 찍히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식을 듣고 의아한 사람이 있다면 여전히 내가 제주에서 직장 생활했던 것조차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혹은 내심 그렇게 지내길 바라는 사람일지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내가 직장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면 놀라는 기색이었다. 자연을 만끽하는 모습이 직장생활과 매치되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 2년 4개월 간 서울 소재의 IT회사에서 UX/UI 디자이너로 근무했던 것을 뒤늦게 밝힌다. 제주 입도 후 1개월 만에 구한 직장으로, 이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이사님께서 당시 새로 설립한 회사였다. 만만찮은 제주 정착 비용과 물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가스비에 놀라 소일거리를 찾던 내게 선뜻 함께 일하자고 제안 주셨던 건, 그가 만들고자 했던 앱이 건강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게도 구미가 당길 법한 분야니까. 그렇지만 제주까지 내려와 또다시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길 IT회사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재고하려던 내게 대표님은 근무시간을 얼마든 조정해도 된다고 흔쾌히 말씀하셨다. 결국 하루 6시간만 일하는 조건으로 우리는 다시 동료가 되었다. 내가 제주 구석구석을 틈틈이 맛볼 수 있었던 건 그의 배려 덕분이다. 예기찮게 디지털 노마드가 된 셈이니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나야 운이 좋았다지만 회사도 그랬던 건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이전까지 오프라인 디자인만 해오다 모바일 안의 세상을 디자인한 건 처음이라 숱하게 헤맨 나날이었다. 그런데도 맘씨 좋은 대표님과 동료들은 함께 일하기 시작한 날부터 그만둘 때까지 나와 함께 일한 것을 행복하게 여겨주었다. 말했던가? 내가 인복이 많은 편이라고.




 이만하면 제주도 원 없이 즐기며 잘 다니던 회사인데 별안간 그만두는 이유가 무엇인지, 혹시 궁금하신지. 그 이야기를 하자면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해 10월, 불현듯 참기름 방앗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석이라 차례를 지내기 위해 친척들이 모인 자리였다. 그날따라 그랬던 적 없는 작은 삼촌이 시골에서 참기름과 들기름을 한 병씩 짜 왔다. 친구가 직접 깨 농사를 지어 기름을 짜주었다고. 그때 문득 떠올랐다. 어릴 쩍 엄마도 시골에 다녀올 때면 늘 참기름과 들기름을 한 병씩 들고 서울로 올라오곤 했다. 외숙모께서 기름을 짜 보내주신 일도 더러 있었다. 그런 풍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게 기분 좋은 향수처럼 느껴졌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낯선 시골길을 걸을 때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한다. 그 까닭도 방앗간에서 나는 고소한 기름 냄새 때문이다. 방앗간은 정겨운 마음이 들게 하니까.

 한편, 그때의 나는 디자인이라는 업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던 참이었다. 내가 하는 작업이 과연 정말 필요한 것인지. 자본의 원리로 세상에 필요치 않은 것들을 마구 생산해내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불필요한 것을 뺀 디자인이야 말로 좋은 디자인이라고 하지만, 실은 내가 하는 작업들이 그 자체로 불필요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할 수만 있다면 불필요한 것을 내손으로 생산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무언가를 생산한다면 최대한 필요한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순수한 재료로 정직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것. 우리 삶에 익숙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것. 그게 바로 참기름이었다.

 그때부터 틈 나는 대로 전국의 숨은 방앗간을 인터뷰하러 다녔다.




 그래서 참기름 방앗간은 어찌 되고 있냐고? 지금은 깨끗이 마음을 접었다. 참기름을 짜려면 참깨가 필요한데,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참기름은 대체로 중국산이나 인도산 참깨를 사용한다는 것, 국내산 참깨라고 표기하지만 농장에서 깨를 털 때 중국산 깨를 마구 섞어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직접 깨 농사를 지어볼까 싶어 한 번 시도해보았다가...... 깨끗이 마음을 접게 된 것이다. 역시 나는, 수상할 것 하나 없이 농사에는 전력을 다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혹시라도 궁금하신지. 우선 당장 내일부터 포레스트 요가 정규 지도자 과정(Forrest Yoga TTC) 참여한다. 200시간의  여정이다. 과연 내가 타인에게 요가를 가르칠  있는 사람인지 알아보기 앞서, 내가  스스로의 스승이 되어보고 싶어 선택한 결정이다. 물론 이번 배움으로 누군가를 가르칠  있는 사람이 된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 그것이야말로 불필요한 것을 생산하지 않고 오로지 세상에 필요한 것만을 남기는 행위일 테니까. 어쩌면  일에 닿기 위해 참기름 방앗간을 하고자 했던 마음이 샘솟았던 걸지도.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분명히 그렇다고 믿는다.




 혹자는 내게 하던 일에 마음을 오래 주지 못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일정한 주기로 일에 대한 싫증을 내는 게 아니냐고. 지금까지 배워온 일과 해왔던 일이 아깝지 않냐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특정한 결과를 위해 한 일이 아니라, 단지 내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라고. 그러니 과거에 내가 이루었거나 성취를 맛보았던 일을 그만둔다 한들 아쉽거나 후회되지 않는다. 그 모든 선택이 지금의 나를 살기 위한 과정이었다. 물론 지금 선택한 일 또한 그럴 것이다.

 혹자인 엄마. 엄마는 나이 50이 넘어 대형 면허를 따 버스 운전을 시작했지. 솔직히 그런 엄마가 내게 할 소린 아니다. 누가 봐도 나는 엄마를 똑 닮았으니, 나도 엄마처럼 용감하게 새로운 일을 시작해볼게.

 퇴사를 하고 요가 정규 지도자 과정에 도전하겠다는 내게 아낌없는 응원의 말을 해주신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의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진심이라 내 마음을 크게 울렸다. 부디 그분들의 말의 울림만큼, 나 또한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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