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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Apr 26. 2019

힘 빼

 구명조끼 없이도 바다수영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음파음파가 여전히 버거운 나는 수영할 때마다 번번이 잡을 곳을 찾으며 그 생각을 한다. 물속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 한 처지라 그렇다. 내가 바라는 건 자유형도 접영도 아니요, 그저 고개 내밀고 하는 수영, 그거 딱 하난데. 그런 내게 얼굴 한 번 물에 적시지 않고 수영하는 내 친구는 말한다.

 "힘을 빼면 돼."

 같은 친구가 나보다 5년 일찍 서핑을 시작했다. 초보 서퍼인 내게 가르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겠지만 그중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패들링 할 때 팔에 힘을 빼"라는 말이었다. 잔잔한 바다에서도 있는 힘껏 팔을 치켜들고 노 젓는 초보 서퍼들이 금세 지치는 이유가 거기 있다고.

 생각해보니 비슷한 말을 암벽 등반할 때도 들었다. 초보 클라이머 시절, 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홀드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던 내게 선생님께서는 되려 "힘을 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팔다리에 온 힘을 다해야 홀드를 오래 쥘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힘을 툭 풀어야 오래 등반할 수 있는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대체로 모든 분야에서 초심자는 비슷한 조언을 듣게 된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어디선가 고수가 나타나 후 내뱉고 홀연히 사라지는 바로 그 조언, "힘 빼"라는 말.


 무언가의 풋내기였고 여전히 어떤 분야의 풋내기인 내가 초심자의 입장을 헤아려보자면 이렇다.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누구나 힘 조절을 못 하기 마련인데 그게 오래 지속된다면 그만큼 두려운 게 아닐까 한다. 눈앞에 닥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꽤나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그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니 온 몸에 힘이 들어가고 경직되고 만다.

 그런 상태에서 "힘 빼"라는 말을 듣는다고 "오케이, 이제 힘 뺍니다~!" 하고 쉽게 힘이 빠진다면 내 몸은 그 누구보다 가볍고 말랑말랑했을 거다. 고개를 내밀고 수영하는 건 물론이고 바다 깊숙이 다이빙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길 바라지만 나는 쫄보로 태어났고, 삶 속에 두려움이 쌓인 만큼 온몸에 자잘한 근육이 덕지덕지 붙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깊은 물, 내 몸을 덮치는 파도, 높은 암벽이 두려운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보니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답답했던 내 모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을 방어하는 게 잘못은 아니니까. 있는 힘껏 나를 지키려는 생존 본능을 어찌 탓할 수 있을까.


 내 몸에 든 힘을 누가 억지로 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두렵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은 별 거 아님을 깨닫는 순간을 기다려보는 건 어떨까 한다. 내 몸의 힘이 상쾌하게 빠지는 순간 그 느낌을 알아차리고 '아! 이게 바로 힘 빠진 느낌이로구나!' 하고 체감한다면 두려웠던 일은 서서히 만만해지고 재밌어질 것이다. 그제야 내게 조언했던 고수와 동일한 느낌에 대해 주고받을 이야기가 생기기도 할 것이다.




 힘 빼기가 익숙해진 초심자는, 그렇지만 고수를 좀 더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의 "힘 빼"라는 말이 결코 온몸의 힘을 헐겁게 풀어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니까. 그 말은, 실은 송곳처럼 뾰족이 써야 할 곳에 힘을 쓰라는 의미라는 걸 눈치채야 한다. 그래야 온 몸은 자유를 만끽하게 되고 입가엔 미소가 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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