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 병원에서
수술한 지 4일째가 되던 목요일 11시에 때마침 재활 병원에 공석이 났다는 말을 들은 후 바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원래 있던 병실은 4인실이고 코로나로 면회도 별로 없었지만 병실로 들어갔을 때부터 있던 백인 할머니가 밤낮으로 흐느끼고 화내고 짜증 내며 퇴원시켜 달라고 해서 진절머리가 나있던 상태였다. 딱히 말할 힘도 없어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이 할머니 때문에 너무 피로하고 불편했다. 반면 할머니 체력 인정이다. 재활 병원으로 간다고 하니 발걸음도 가벼웠고 혼자서도 제법 잘 걸을 수 있었다. 차량으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에 뇌 재활 병원이 위치하고 있어서 구급차로 동생과 이동했다.
뇌 재활 병원은 10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기간이기 때문에 3일간 자가 격리를 했어야 했다. 구급차로 같이 온 동생은 출입이 가능했는데 어차피 면회 시간이 종료되면 집으로 가서 사람들과 접촉하는데 자가 격리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이게 캐나다였지’라며 웃어넘겼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겠던 게 재활 병원에 있던 나의 공간은 마치 영화에서 보던 호텔 스위트룸 같았다. 창 밖으로는 토론토 중심가가 보였고 12평 정도 되는 크기에 침대 한 개와 서랍장이 양 옆으로 놓여있었다. 게다가 그 넓은 방이 나 혼자 쓰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더욱 편하고 좋았다.
재활 병원에 입원해서는 채혈부터 했는데 간호사분이 어리숙한 분이었는지 혈관을 못 찾고 주사를 몇 번이고 찔렀다. 피를 잘못 뽑았는지 입원한 내내 팔에 피 멍이 들어있었고 팔을 편하게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이때 동생을 통해 파상풍인 것은 아닐지 말하려 했으나 실어증인 나로서는 무리였고 온몸을 사용해서 설명해서야 겨우 말하고자 했던바를 전할 수 있었다. 재활 의사 선생님은 우선 지켜보자고 했고 바르는 연고만 처방해 줬다. 면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오전 7시, 오후 3시, 8시로 나눠 간호사님이 들어와 혈압, 맥박, 체온을 측정하고 처방된 약을 주신다. 처방된 약은 Keppra를 포함한 각종 비타민, 소화제였다. 오후에는 하복부에 주사를 놔줬는데, 이유를 듣고 보니 외부 활동이 적을 수밖에 없는 환자들에게 주입한다고 한다. 주사 바늘은 작은데 생각보다 아프다 보니 정말 싫었고 나중에는 재활 운동 열심히 할 테니 경구제로 바꿔달라고 사정까지 할 정도였다. 결국엔 경구제로 바꿨다.
목요일에 재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병원 센터장님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시고, 각 분야의 재활 선생님과 만나며 어떤 일정으로 진행될 것인지 설명을 들었다. 작업, 물리, 언어치료를 받아야 하며 각 수업별로 보조 일정까지 있어 주중 총 15~18개 정도의 대면 수업을 들었어야 했다. 대학생 때도 이렇게 열심히 안 했던 거 같은데… 보통 하루에 45분 분량 정도의 수업이 3~4개 정도 잡혀있었고 체력적으로 많이 약해져 있던 상태라 걱정이 앞섰다. 작업치료는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일상생활로 복귀하기 위한 치료를 하는데, 치료 시작 전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독립적인지 의존적인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부터 집안일 빈도수 등 다양하게 물어본다. 물리치료는 정말 재밌었다. 빨래 들고 걷기, 계단 오르기 같은 기본적인 거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운동할 시간을 따로 줬다. 뇌 수술을 해 말이나 기억력은 안 좋아졌어도 운동은 기억하는 게 신기했달까. 반면, 언어 치료는 정말 힘들었다. 모국어인 한국어도 버겁게 됐는데, 영어는 오죽할까. 캐나다에 비교적 늦게 유학 와서 잘 못해도 어렵게 배운 영어인데 정말 억울해 미치는 줄 알았다.
재활병원에 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을 때다. 재활병원 의사 선생님은 조직검사 결과를 내게 알려줬고 예상했던 데로 비교적 양성이고 저등급에 속하는 2등급 핍지교종(Oligrodendroglioma)이라는 질환이었다. 역시나 의학용어는 잘 들리지도, 발음하기도 어렵다. 의사 선생님 소견에 따라 악성과 양성 그 사이 어딘가로 갈리는 병이며 다행히 척수에는 전이되지 않는 유형이라고 들었다. 다만, 좌측 전두엽에 있는 종양도 현재 의료 기술로는 완벽하게 적출하는 것은 불가능해서 잔존 종양이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우측 측두엽에도 작은 종양이 있기 때문에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일반적으로는 같은 종류의 뇌종양이 발생하기 때문에 측두엽도 같은 종류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의 선생님과 외래 상담을 통해 듣기로 했다.
수술 10일 후 다소 순한 계면활성제가 들어가지 않은 샴푸나 베이비 샴푸로는 수술 부위를 제외하고 세척해도 된다고 해서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씻었다. 기름기가 많아 하루만 안 감아도 머리에서 냄새, 가려움증이 있는데 10일을 못 감으니 내겐 고문이었다. 비듬도 많이 생겨 머리 좀 긁적이면 비듬이 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도움을 받아 머리를 감고 2주 차가 돼서야 수술 절개 부위에 감염, 통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잘 붙어 간호사님이 절개부위에 심은 32개의 스테이플러(호치케스)를 제거해 줬다. 보통 스테이플러 제거할 때 아프진 않을지 많이 걱정하는데 손톱으로 1초 정도 잠시 누른 느낌일 뿐 전혀 아프지 않다. 스테이플러를 제거하고 작업, 물리치료는 원활하게 진행해, 이제는 독립적으로 모든 일을 수행, 운동마저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재활 병원에서 보조 선생님 감독 하에 개인 운동을 이어나갔다. 대부분 맨몸 운동을 했다.
언어가 가장 문제였는데 이때쯤만 해도 병문안 오는 사람들에게 반말, 단답 등 내가 원치 않았던 말 들만 나왔다. 작업치료를 하며 어느 정도의 기억력과 지능이 돌아왔다 싶으면 초록색 팔찌를 줬는데, 이때부턴 재활 병원 안에서 이동 가능, 지인들 까지 초대 가능했다. 여러 지인들이 병원에 방문해 선물, 도시락 등을 주며 짧은 대화를 했다.
인간은 사회성 동물이라는 말이 맞는 게 지인들이 병문안을 오며 가며 하자 주변을 살펴보고 할 여유가 생겼다. 둘러보니 재활병원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들 뿐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가족이나 지인이 매일 방문하는 경우도 드물어서 한편으로는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반면, 암 병동 환자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했다. 여자친구는 매일 아침 일찍 점심, 저녁 도시락까지 챙겨 와서 업무를 보고 늦은 시간이 돼서야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더불어, 정말 다행인 것은 재활병원에서 요구하는 3일 자가 격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퇴원할 때까지 1 인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보험사 매뉴얼 대로라면 자가 격리 후 2인실을 사용하게 돼있는데 2인실은 이미 만원으로 퇴원하기까지 1인실을 사용했다.
구글, 네이버 같은 통합 검색창과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현재 상황에 최대 2주가량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실어증 때문에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재활병원에서는 최대 두 달가량 있을 것을 권장했고 안 그래도 짧은 캐나다 여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여자친구에게도 미안하고 비통하기까지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재활에 집중하며 3주라는 시간이 흐른 시점에 Sunnybrook 뇌 병동에서 외래가 잡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병원은 20분가량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재활 병원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두 가지 선택 사항을 줬다.
1. 돌아와서 재활 병원에서 3일간 다시 자가 격리, 이후 언어 장애 호전될 때까지 재입원
2. 외래 후 귀가. 언어 재활은 전면 화상 상담으로 전환
나는 병원에 갇혀 있는 것이 심히 답답하기도 했고 창 밖의 화창한 날씨가 무척 그리웠다. 퇴원하기까지 본래 예정돼 있던 7월 말쯤으로 더 길었지만 이달 초 퇴원으로 일정을 어느 정도 줄여줬었다. 여자친구와 상의 후 추가로 몇 달을 입원해 있는 것이 무리일 거 같아 후자를 선택했고 퇴원 전날 재활 병원 총괄 이사, 각 분야별 재활 선생님들과의 대면 상담이 이어졌다. 내 질환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 선생님 별로 주의할 사항과 피드백을 줬다. 재활 의사 선생님은 현재 화상 상담과 같은 경우 대기열이 있어 최소 두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별도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더군다나 뇌신경 전문의가 좋은 소식으로 불렀다고 해서 퇴원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