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달력

by 글바트로스

마지막달

채 떠나기도 전

서둘러 들이닥치는 단골손님

건네주는 봉인된 비밀문서,

사뭇 설레거나

그리 궁금하지 않더라도

첫길 순례여정 마중 나온 이정표,

엇갈리며 동행한 365일 마지막 날

확정금액 지불해야 하는 백지 어음.


네모진 얼굴에

낯익은 분단장대신

엄격한 얼굴로 다가오는 숫자행렬,

뚜껑 닫힌 365개 항아리마다

무얼담고 오는 걸까

연녹색 웃음인지

진회색 우울인지

암갈색 고통인지

뜬금없는 혜안인지

도대체 가늠할 수 없어

또랑물 가재처럼 뒷걸음친다.


너무 일찍

어른흉내놀이로 가둔 동심,

나이 들수록

섬마을 겨울 높새바람처럼

기어코 귀환하는 묻어둔 애환,

어느새 마음문 틈새 비집고 나와

눈주름사이에 맺힌 눈물방울 못 본 양

굳이 눌러쓴 눈웃음 각시탈 한해,

차마 못다 한 이야기

희귀한 보물인양 달력 속에 봉인된다.


예전엔

다가오는 새해마다

신귀한 마술나라 성문인양

줄달음 마중 나가던 유년,

빈 손 회한에

하늘 향해 흰자위 도끼눈 흘기던 청년,

비상할 수 없는 설움으로

날개 없는 새가슴 헐떡대던 중년,

긴 몽환에서 깨어나는 순간

비로소 알아채는 일심동체 영혼.


누구도

셀 수 없는 물결로

다가오는 심해 365일,

풋내기 사막 은수자 수도승처럼

무릎 꿇고 두 손 모은 청원,

"빛나는 행인에 넋 잃는 날

하루도 허락하지 마시고

오직

작고도

허약한 존재인

나를 성찰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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