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소설 쓰기 기초훈련; 그린 듯이 쓰기(Rendring)
예쁘진 않다. 오히려 밋밋하다. 겉모습과 달리 공기를 맑게 해주는 특별한 재능이 숨겨져 있단다. 그 신묘한 덕목은 체감되지 않고, 그저 두툼하고 길쭉한 녀석.
선참들의 꽁무니, 창가에 세워두고 깡그리 잊어버렸다. 선명한 꽃망울도 그윽한 향내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생존용 물조차 청한 적 없다. 존재감 없는 세입자, 까맣게 잊혔다.
물 주기로 지정한, 토요일
줄지어선 순서대로 물을 주던 중, 녀석 앞에서 멈칫했다.
큰 잎이 – 긴 다리가– 늘어진 채로 뻗은 상태다. 열대나라에서 먼저 이주한 또래들의 번질대는 때깔과 달리, 노랗게 뜬 얼굴이다. 힘겨운 모습에 안쓰러움과 동시에 성가심도!
“얘! 왜 그래? 선참에게 얻어터졌냐? 어디서든지, 사는 건 만만찮아. 힘내라!”
일주일 후
두 번째 잎도 – 가냘픈 팔까지 – 문드러져 있다.
“인마, 다음 주에도 골골대면, 내다 버릴 거다! 정신 줄 놓지 마. 남의 나라에서 사는 건, 목숨 거는 외줄 타기 곡예야. 사람이나 짐승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야. 타국에서 생환한 선배로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라!”
삼주 후
통째로 - 몸통까지 - 완전히 뻗은 모습이다.
“야! 이건 빈말 아니다. 다음 주에도, 이런 몰골이면 가차 없어. 네 짝지랑 함께, 비닐봉지에 둘둘 말아서 쓰레기통에 버릴 거다. 마지막 경고니까, 알아서 해!”
뭔지, 좀 찜찜하다.
창가 틈새 바람, 너무 차가운 걸까. 지 짝지는 괜찮은데, 녀석만 빌빌거리네.
샘의 카랑카랑한 말소리가 귓가로 맴돈다. “반드시, 햇볕 드는 창가에 두세요.”
전문가가 시키는 대로 충실히 따랐는데, 도대체 이유가 뭔데? 말이 통해야, 물어나 보지. 통교가 절실하지만, 어떻게? 조용하다는 덕목으로 받아들였지만, 최고 가치가 퇴색 중이다. 반려식물은 고사하고, 성가신 동행처럼 느껴지는 순간.
갑자기 살갗 문드러지는 녀석의 고통, 나에게 전이되는 묘한 전율에 뜨끔했다.
프랑스 유학시절, 전혀 나아가지 못하는 논문 앞에서 밤새도록 찔끔거린 다음날 아침, 터질 듯이 부어올라 허물 대던 눈매랑, 사뭇 닮은 꼴인 녀석의 살갗!
녀석만, 금쪽같은 겨울햇볕 쏟아지는 창가에서 실내 벽 쪽으로 이주시켰다.
물주는 토요일
우선 - 하얀 벽 옆에 홀로 서 있는 녀석에게 - 다가섰다.
다행히, 축 늘어진 잎은 없다. 못 버티겠다던 시위, 종료된 걸까. 아니면 서릿발로 쏟아부은, 경고가 통했나. 마음속에 떠돌던 작은 먹구름이 사라진 것처럼, 개운하다.
일주일 후
한 녀석이 송두리째 뽑혀나간 빈자리, 수줍게 고개 내민 연초록 잎 하나!
갈증에 목마른 모양새다. 갓난쟁이 손 같은 어린잎, 소멸할 수 없는 녹색 숨결로 생환하는 중이었다. 매주 뿔 나팔 불어대듯이, 연달아 둘! 셋! 넷!
그날부터, 책상 바로 옆에 이주한 녀석에게
“잘 잤냐?”
아무런 말이 없다. 뭐라고 대꾸하는지, 아예 묵살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생존자체만으로도, 마냥 고마울 뿐이다. 녀석의 숨겨진 덕목인 공기청화 능력여부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새싹이 움튼 그날부터, 주객이 전도된 우리.
노심초사하는 여종처럼, 마님 아기살갗인양 여린 잎을 지극정성으로 닦아준다.
생명줄 놓지 않은 목숨, 기이하게 부활한 생명의 찬가로 들려오는 환청도.
조용한 녀석, 말없는 동행만으로도 잔잔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처음엔 빼어난 미모 아니라고 홀대했지만, 지금은 볼수록 귀한 자태다.
콩깍지 제대로 씌웠나 보다.
녹색 잎사귀의 노란 테두리, 황금 띠를 두른 여인처럼 보이기조차!
녀석, 뵈는 대로 꼴찌로 등급 매기고, 마음껏 홀대했던 시기!
건강검진 후부터, 첨부된 의사소견서를 들고 대학병원 드나들던 기간이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정밀검사는 보란 듯이 다른 부위로 점차 확장되어 갔다. CT상의 부위마다 드러난 징후, 초음파에 번지는 흔적, 내시경에 얽힌 자국, 서로 뒤얽히며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점차적으로 가중되던 불안감, 황소 뿔처럼 꿋꿋하던 자아도 눈치 없이 흔들거리고, 저녁 황혼처럼 지레 겁먹고 노랗게 질린 얼굴까지, 도대체 반갑잖은 새로운 신원을 맞대면하며 잔뜩 뿔났던 지난해.
짙은 암갈색 동굴의 출구는 쉽게 드러나 보이지 않고, 점차적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침잠하는 동안, 계절들도 지겨웠는지 줄행랑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 시기.
무인도가 그립기까지.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심정에서다. 어쩌면 통째로 속내를 토로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그리웠는지도. 사실은 진심으로 통교하고 싶은 갈증으로, 목 타 던 시간이기도. 신통한 명약만큼이나 절실한 공감이었지만, 누구나가 아닌 - ‘동병상련’의 사람이 – 필요했던 시기였다.
우연히 만난 지인.
재수술해야 한다는 힘겨운 토로에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병고로 질린 영혼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처럼, 맘도 무거웠다.
사실 우린, - 그와 나는, - 동지였다.
그의 질병 위험도가 더 높다는 사실만, 제외하고.
비슷한 출발점에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순례자 같은, 동질의 친근감이 발로였을까?
울림 없는 응원가를 못 부른 다음날, 작은 화분을 앞세우고 가게로 무작정 찾아갔다.
사실 쑥스러운 마음과 동시에 약간 겁도 났지만, 에라 모르겠다며 직진하는 코뿔소처럼 직진했던, 아주 드문 날이다.
다소 무뚝뚝한 평소 모습과 달리, 갑자기 변모한 수다쟁이 앞에서, 덩달아 둥둥 맞장구를 쳐댔던 기분 좋은 오후였다.
출구가 안 보이는 어두운 내면의 동굴에서 허우적거리던 시기.
병고에 기죽은 지인에게 작은 화분 하나 건네주고, 함께 빛을 분출하는 횃불처럼, 서로 위로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날, 가장 고운 녀석부터– 원예 수업 후에 가져온 작은 화분을 – 시집보내기 시작했다.
새벽 눈처럼 정갈한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철부지 마음, 출발점이다.
예쁜 우선순서로 출가시켰다. 맨 꼴찌로 남아 있던 녀석, 조용한 동행?
조용한 동행,
아무런 말없이 충직한 생명, 신체 부위를 맞잡고 있는, 각 장기들이다.
의사의 냉엄한 진단에는 곧바로 고개 떨구곤, 뒤돌아서 나오자마자
“너, 왜 이래? 유통기간 아직 많이 남아있지 않냐?”
인색한 군주처럼, 다그치듯 힐난부터 그어댔다. 변절을 일삼는 팔색조 의식에도, 군말 없이 일편단심으로 동행해 준 고마운 벗이라는 인식, 한참이나 뒤늦게야 겨우.
20년 전에 만든 ‘장기기증희망등록증’과 지난해 치료 중에 만든 ‘사전연명의료서 등록증’을 지갑 속에 챙겨 넣던 순간, 그때야 여태껏 말없이 지지하며 침묵으로 지고지순하게 목숨을 지켜준 세포들에게, - 과묵한 동행에게 - 난생처음으로 오롯이 감사했다.
2025년 달력 거의 매일 적혀있던 병원 약속시간도,
2026년 서두부터 생선 훔쳐 먹은 검은 고양이처럼 날쌔게 도망치는 중이고,
마지막 꼬리만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고맙다는 한마디 건네지 않아도, 침묵으로 동행하는 내 몸,
거친 홀대에도, 말없이 동행하는 작은 화분,
가만히 뒤돌아보지 않으면,
도대체 알아차릴 수 없는
눈 위의 찍힌 발자국 닮은
조용한 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