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부재

외로움/감각적인(색깔과 소리) 글쓰기; 1학기 4강 과제

by 글바트로스

갑자기, 멈춰 서는 녀석.

단짝 집에서 자고 오는 중일까?

길섶 마른 장미 덤불사이에서 빠져나오다 놀랐는지, 갑자기 멈춰 선다.

뜬금없는 불청객인지, 나를 뚫어져라 노려본다.

구슬처럼 동그란 눈동자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당차고 매서운 눈빛으로 묻는 듯하다.

“뭔 일로, 아침 댓바람에 강가에 나왔소?”

“관심 꺼.”

“그쪽도 나처럼,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새웠소?”

“가던 길이나 가.”

“아따, 우리 통성명이나 한번 해볼까요?”

“눈곱만큼도, 그럴 마음 없거든.”

“혼자 온 모양인데, 되게 쫀쫀하네요.”

샛노랗게 노려보지 말고, 후딱 꺼져!”

“고약한 성깔로, 혼자 실컷 싸돌아 다니시구려!”

“혼자 다니던지 둘이 손잡고 다니던지 우르르 떼 지어 몰려다니던지, 관심 꺼.

길 한복판에 그리 버티지 말고, 후딱 비껴라!”

“지난밤에 함께 지낸 암컷보다, 더 사납네요!”

“뭐라고?”

“소원대로 사라져 줄게요! 야~옹, 나야~아~용!

큰 선심이나 쓰듯, 겨우내 검은 고양이가 사라진다.

새벽 산책길에 마주친 까만 길양이와 우연찮은, 비밀 대화다.

참견쟁이 까치도 - "끼이익긱 끾끽, - 제각기 고유 언어로 쏟아낸,

눈곱만큼의 공감도 없는 아침 수다!



동일한 언어로 소통하면, 서로 공감할 수 있을까?

붉은 언어로 부르면,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이 빨갛게 웃어주기를 바라던 그 계절.

낯선 말귀로 한 박자 뒤늦게 반응하던 이국땅에서, 걸신들린 듯 시도 때도 없이 모국어로 허기졌다

해갈하지 못한 갈증으로 두 다리도 쭉 뻗지 못하고, 새우처럼 구부린 등으로 뒤척이던 밤.

비몽사몽간에 찾아온 밤손님인 꿈 속에선, 상대가 누구든 간에 모국어가 실타래처럼 술술 풀리고, 척척 공감하는 마술나라(?)였다.

동글고 납작한 얼굴 마주 보며 길쭉한 눈웃음으로 만리장성을 세우고 허물던, 아름다운 몽환!

내 심장이 흔들리면 후렴구처럼 네 심장도 물결치고, 내 영혼이 부르르 떨면 네 영혼도 파르르 떨어대고, 내가 말하면 옹달샘처럼 네 음성이 수줍게 화답했다.


몽환, 잠 속에서만 실존하는 세상인가?

낯선 나라에서 엎치락뒤치락 대던 긴 밤에 시리즈로 다가오던 꿈, 오직 몽환제국이었나?

모국어에도, 새까만 심연은 엄연히 존재한다.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아찔한 계곡, 서로의 심혼 이어주는 출렁다리는 없다.

굽은 부리 앙다문 맹금류처럼 검은 속마음 숨기고 은밀한 눈웃음으로 서로 탐색하는 시절,

심층 나뭇가지에 앉아 뚫어져라 서로 주시하는 서늘한 눈빛 못 본체 애써 딴청 부린 계절,

어떻게 적절하게 대응하고 대처해야 할지 아예 몰라 직시하는 대신 우선 눈길을 피한 날,

심장끼리 삐걱대는 마찰음소리 들리기 시작하면 가재처럼 뒷걸음치며 물러서던 순간,

지레 겁먹은 세포들은 채색된 붉은 피멍으로, 숨죽이며 아예 죽은 체했다.


사람과 사람사이를 가로막고 선 내벽처럼, 버티는 보랏빛 문!

공감하는 심혼 찾아 헤매는 애달픈 연가, 상여꾼의 곡소리처럼 돌고 돈다.

아무도 쉬어가라며 마음문을 열어주지 않는 간이역, 절뚝대는 낡은 기차는 출발한다.

"낡고 녹슨 기차야,

목쉰 소리로 울어대지 말고, 공감 없는 도시를 떠나자!"

봄 여름 가을 겨울 오고 가듯이 '올 사람은 반드시 오고 갈 사람도 기어코 떠나가는' 낯익은, 그래도 여전히 낯선 세상 풍경 앞에서 큰 구멍 뻥 뚫리는 가슴.

멈출 줄 모르는 강물 위에서, 나뭇잎처럼 떠내려가는 공감이여!


나의 오랜 벗아,

떠나고 싶어 안달하는 보랏빛 입술, 짙은 한숨일랑 멈추어 줄래?

떼쓰고 어깃장 부려도 열리지 않는 네 심혼, 누군가의 가슴팍을 걷어차댔던 나.

우린, 오백 원짜리 동전, 앞뒷면일까.

매끄러운 시멘트 바닥 위로 장렬히 곤두박질치는 빗방울일까.

감정 결이나 폭이 달랐을 뿐이라는 설익은 해탈, 저 홀로 불어대는 엇박자 휘파람일까.

엄청난 것을 욕심낸 것도 아닌데도 드러내놓고 요구하지 못하고, 오물 묻은 속옷처럼 숨겨야만 할까.

공감 없는 관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심지어 나조차 못 알아보는, 그런 칠흑나라일까.

공감, 그 달콤한 유혹이랑 이제는 그만 절연해야 할 시간이다.

유통기한 훨씬 지난, 해묵은 나의 인연아!

샛노란 달을 에워싼 달무리 닮은 달짝지근한 공감일랑, 더 이상꿈꾸지 말자!

차라리, 광야로 홀로 가자.

해방의 휘파람 불어대며 가자, 나의 심혼아!

공감 모르는 도시를 훌훌 떠나가는 광풍 닮은, 아예 쪼꼬미 바람으로 태어나 보자.

떠나기 전, 안면 없는 수취인에게 짧은 엽서 한 장 보내야 할까 보다.

마음빈터에 버티고 선 겨울 나뭇가지에 걸어 두는, 화살기도.

“다음 생애 있거들랑, 망망대해 한가운데 무인도로 솟아나게 하소서!”


무인도?

거대한 심해처럼 일렁대는 군중 가운데, 까만 점처럼 유랑하는 나.

성찰도 진심도 없는, 그런 빈말에 수시로 상처받는다.

시뻘건 통증을 주는 주범인 빈말, 참으로 노련한 자객 같다.

작은 만남 중에도 무인도처럼 뜬금없이 격리되며, 오가는 빈말에 부대낀다.

마땅히 떠나야 할 시간인데도 자리 박차고 차마 일어서지 못하고, 혼잣말로 은밀하게 쑥떡 댄다.

"의례적인 말일랑 거두어 주시게나.

그런 말을 주고받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나의 오랜 벗이여, 지나쳐 온 갈림길로 얼른 되돌아가보자꾸나.

무수히 주고받았던 겉치레 말은, 이제 그만 거두어들이세.

울림 없는 말은 날카로운 고드름처럼, 서로의 심장을 꿰뚫고 시뻘건 상처만 남길 뿐이네."


마른 억새풀처럼 서걱대며 오가는 빈말, 절연의 신호탄이다.

풀 섶에 하얀 서리 내리는 겨울 당도하기 전에 떠나가는 가을처럼, 서로 갈라서야 하는 절명의 시간이다.

다들 갈망하는 공감, 누구도 선뜻 내어 놓지 않는다.

챙겨둔 괴나리봇짐 어깨에 메고, 훌쩍 떠난 가을아!

너,

한 번이라도

겨울이랑,

공감해 본 적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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