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둥아!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사람/ 장면을 감정으로 나타내기; 5강 과제

by 글바트로스

버스는 떠났다.

신작로 위에는, 아무도 없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아예 없다. 골목길 쏘다니던 검은 고양이조차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던 덩치 커다란 옆집 개도 조용하다.

왼쪽 집 무너지던 날, 주인 따라갔을까.

그 집 빈터에는 빼곡하게 솟아난 대나무들만, 산에서 하강한 숲처럼 우거져 있다.

오른쪽 집 초가지붕도 절반쯤 돌담에 기댄 채로 겨우 버티고 있다.

양쪽 두 집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우리 집!

둥근기둥 위에서 번쩍대던 감청색 기와대신에 거무스름하게 탈색된 몰골로 마당에 널브러져 있다.

땅바닥에 내려앉은 지붕에 기대 서 있던 나도, 그만 주저앉았다.

오랫동안 그려왔던 낯익은 풍경화 속에서 박제되고 있는 중일까, 나는.


떡대 같던 스님들이 메고 왔다던 실한 기둥들도 세월에 곰삭아 드러누워 있다.

너무 오래 기다리던 무릎처럼, 제풀에 지쳐 결국 꺾이고 말았을까.

부엌과 마루 사이의 찬장만 - 유년의 간식 창고만, - 나를 빠안히 마주 보고 있다.

함몰되어 내려앉은 기와지붕 밑으로 눈썹만 겨우 내밀며, 아직은 여기 있다고 아는 체하는 것일까.

돌담따라 둘러 선 단감나무들도 수명이 다했는지, 남아있는 잔가지마다 잎사귀들만 달랑댄다.

장독대 가득 찼던 항아리대신에 깨진 채로 제멋대로 나뒹구는 사금파리들.

마당너머 텃밭에 피던 도라지꽃, 시집가기 전에 언니가 손톱에 물들이던 봉숭아꽃, 여름 내내 줄기차게 붉게 피어있던 맨드라미꽃, 다들 어디로 갔을까.

일렬로 늘어선 네모난 커다란 멍석 위에서 가을볕에 물기 말리던 황금빛 나락들도, 오간데 없다.

마당에는 새 주인처럼 깍지 끼고 버티고 서있는, 온통 잡풀뿐이다.


선산 골짜기마다, 곡괭이로 다랭이 논배미 일구던 외골수 농부.

소먹이 꼴 대신 검붉게 익은 산딸기나무 마구 베어 지게에 지고 오던, 백발 아버지 모습도 어른거린다.

밀물처럼 드센 세월의 파고에 휩쓸리다가 뒤늦게 찾아온 고향집, 퇴색된 대청마루에 기대앉아 줄줄이 귀환하는 상념 따라 물풀처럼 마냥 흔들리고 있다.

도대체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굽이치는 파도 따라 떠 밀려온 빈병처럼, 목젖까지 차오른 짠물에 온몸의 세포들도 오그라든다.

한 번이라도 볼 비비대고 싶었던 얼굴, 흔적조차 없다.

왔다가 사라지는 선명한 기억들만, 날카로운 사금파리 파편처럼 심장을 후벼 판다.



후르르 몰려온 참새떼.

작은 마당가에 서 있던 대추나무 위로 내려앉자마자, 시끄럽게 조잘대기 시작한다.

“저 애, 낯익은 얼굴이네?”

“아따! 이 집 진갑둥이, 막내 딸내미잖아.”

“저그 어매도 아부지도 없는 빈집에 뭐 땜 시리 왔을꼬?”

“그러게나. 오래전에 바다 건너 외국 갔다는 소문은 들었네.”

“뭐 하러, 남의 나라까지?”

“꼬부랑 글, 배우러 갔다던데."

“유별스럽구먼. 까막눈인 우린, 잘도 살잖아?

“누가 아니래!”

“부모 살아있을 때, 잘하지. 저리 넋 놓고 멍하게 앉아 있으면, 살아오나?”

“인간들은 우리보다 목숨 줄이 길어서 그런지, 철이 늦게 드나 봬”

“청산유수처럼 말들은 잘해도, 행동거지는 왜 저리 굼뜰까?

“참말로 잽싸지, 우린!”

“가서, 한수 가르쳐 줄까?”

“아서라! 지 똑똑한 무리가 인간들이야~!”

“야! 엄청나게 시끄러운 까치부부 온다. 우린 그만, 딴 데로 자리 옮기자!”


감나무 높은 나무 가지에 사뿐히 내려앉는, 까치 두 마리.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잘 아는 양 나를 바라본다.

이윽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비행기 타고 와서 엄청나게 피곤하재~?”

"..."
“이리 급하게, 오지 않아도 된다."

"..."

“우리는 - 너그 아부지와 어매는 - 딴 데로 안 간다. 늘 여기 있다.”

"..."

“어디, 아픈 데는 없고?”

"..."

“뭐 먹고 싶으냐?

말만 해라. 후딱 만들어 줄게,

막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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