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간결하게 쓰기; 6강 과제
창가의 첫 번째 좌석, 나의 지정석(?)이다.
이 특별한 자리를 사수하기 위하여, 도서관 아침 개문 전부터 줄을 선지 7년째다.
특강이 없는 날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껌 딱지처럼 자리에 앉아 하루 종일 뭉기적거린다.
영화관 대형 스크린보다 더 넓은 창 너머에는 떡갈나무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줄지어 서 있다.
커다란 잎사귀 사이로 강물이 소리 없이 지나가는 모습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작은 글자들이 새까만 병정들처럼 나를 에워싸는 순간, 녹색 강물은 속 깊은 옛 동무처럼 다가온다.
대학원 첫 강의 듣던 날부터, 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새 학기뿐만 아니라 중요시험이 –판사 임용고시나 의사면허시험 날짜가 - 공고되는 날부터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한다.
다채로운 색깔의 눈동자들이 뒤바뀌는 물갈이 흐름 속에서도, 나만 까만 점처럼 줄기차게 붙어있다.
나보다 한발 늦게 도착하는 독일 청년, 늘 먼저 다가와 기특하게도(?) 아는 체한다.
가을 황금 밀밭처럼 물결치는 금발과 남해바다보다 더 새파란 눈동자가 상큼하다. 섬세하게 다듬어진 조각 같은 얼굴은 볼 때마다, 삭막한 내 마음에도 꽃물이 차오른다.
우린, 대학 도서관 쥐(?)로 소문이 나 있는, 이웃사촌 사이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질문이다.
“너의 나라로 돌아간다고?”
“그래.”
“내 룸메이트인 중국 학생은 프랑스에 남기로 했대. 영리한 결정이지. 넌, 전쟁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데도, 귀국한다고?”
“그리 위험한 상태는 아니고. 귀국하는 게 아니고, 귀향하는 거래도.”
“아무튼 돌아가는 거잖아. 똑같은 사실인데, 굳이 귀향이라고 강조는 이유가 뭐야?”
“귀국과 귀향은 다른 말이야. 내가 태어난 땅, 부모님이 묻힌 흙으로 귀향하는 거야.”
“넌, 참 불가사의한 한국인이구나!”
공동묘지에는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다.
남도의 섬을 에워싼 파란 호수 같은 잔잔한 바다만, 저 멀리 보일 뿐이다.
2월 첫날부터 서둘러 내려온 봄볕에 얼어붙은 땅이 녹아내리고 있다.
따스한 햇살에 두꺼운 외투를 벗어 어깨에 걸친 후, 하나씩 묘비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흘러간 세월만큼 유입 인구도 많았는지, 공동묘지의 지형은 내 기억과는 사뭇 다르다.
예전에 없던 키 작은 소나무들이 무덤들을 에워싼 울타리처럼 서있다.
어디에도, 내가 찾는 이름은 없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짧은 겨울해도 앞산 능선너머로 성급히 달아나고 있다.
이제는 묘비명 찾기를 포기하고 하산해야 할 순간이다. 내키지 않는 마음만큼 발길도 무겁다. 허탈한 아쉬움에 가중된 죄책감으로 짓눌렸지만, 결국 돌아섰다. 바로 그 순간, 난데없이 들려온 낯선 울음소리. 날카롭고도 기이한 울부짖음에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건너편 키 작은 소나무 덤불 너머에서, 자지러질 듯이 숨넘어가는 괴성이 들려왔다.
“ㅉㅉㅉ, ㅉ ㅉㅉ ㅉㅉ!
“가지 마, 나 여기 있어!”라며, 내 마음을 후벼 파며 울부짖던 존재.
난생처음 보는, 작은 새.
키 작은 소나무 가지에 오뚝이처럼 앉아있다. 다가서는 나를 보고도 놀라 날아가기는커녕, 동그란 눈으로 빠안히 응시한다. 녀석의 바로 정면에는 둥글고 낮은 봉분, 하나.
절반이나 깨진 묘비위에 새겨진 반가운 이름, 엄마였다!
챙겨 온 막걸리와 과일들을 서둘러 펴놓고 큰 절을 드린 후에야 비로소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 막무가내로 급히 왔는데도, 목젖만 따끔거리며 아파올 뿐이다.
심혼에 박힌 기억들은, 세월도 비껴가는 걸까?
제사 다음날이었다.
수업 끝나자마자, 달음박질로 집에 도착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냅다,
“엄마, 배고파! 어서 빨리 밥 줘요!”
“작은 방에 가서, 기다려라.”
네모진 커다란 밥상에는 내가 앉을 빈자리가 없었다.
이런 상황을 알아차린 엄마가 곧바로 작고 둥근 술상에 제사 음식을 차려왔다. 아래마을에 사는 할매도 뒤따라 들어왔다. 외팔인 데다가 외눈인, 그녀와 나는 겸상이었다. 그나마 성한 왼눈에는 눈곱이 잔뜩 끼어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낙지 호롱을 –하나 남은 구이를- 냉큼 집어갔다. 이빨 없는 잇몸에 대고 문지르며 먹다가, 양념 묻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종갓집, 영리한 막둥이네!”
전혀 달갑지 않은 계속되는 칭찬 세리머니 따라 밥알들도 입술 밖으로 연달아 비집고 나왔다.
탕! 소리가 울리도록 숟가락을 내던지며,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서서 후다닥 나와 버렸다.
동네 아지매들에게 음식까지 싸주던 심덕 좋던 엄마, 그녀들이 떠나자 순식간에 돌변했다.
나는 신발도 제대로 못 신은 채로 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친엄마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멈추지 않고 쉼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골목길처럼, 내 신원도 침식되고 있던 그 밤.
끔찍하게도 어둠을 무서워하는 나를 버려둔 채, 아무도 데리려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도.
사방에서 귀신들이 나를 덮쳐오는 공포 속에서, 몸을 잔뜩 쪼그리고 앉아 벌벌 떨어댔다.
골목길 아래에서 다가오는 팔대장승같은 허연 물체에 놀라, 숨도 멈춘 채로 노려봤다.
내 코앞에서 멈춰 선 장본인도 엄청 놀랐는지 큰 소리로 헛기침을 했다. 작은 아버지였다.
“우리 막둥이, 또 쫓겨났구나. 내랑 함께, 집에 들어가자.”
인기척에 방문을 연 엄마 눈에는, 내가 안 보이는 것 같았다.
“형수님, 길 잃은 강아지 데려 왔소. 밥이나 얼른 채려 주소.”
눈도 마주치지 않은 엄마가 차려준 저녁밥, 눈물과 콧물 범벅으로 겨우내 다 먹었다. 낮에 숟가락 내던지며 골낸 추가 벌로서, 저녁 설거지도 해야 했다. 그리고 작은 방에서 한참이나 들었던 훈계, 한 대목이다.
“우린, 너그 아베와 어매는 늙어서 오래 못 산다. 우리 없이 살아갈 너, 누가 보살펴 줄 건데? 헐벗고 배고픈 사람들 내 식구처럼 챙겨 먹이는 건, 오직 너를 위해서다. 천지신명께 올리는 니 애미의 기도다. 도대체, 언제 철이 들래?”
그날밤 서당 훈장 장녀인 엄마의 말들은 수수께끼 같았고, 억울하고도 서러운 마음뿐이었다.
프랑스 도착한 다음날, 손가방을 잃어버렸다.
3개월 언어연수기간 쓸 생활비 전액과 온갖 서류와 여권까지도.
국제미아는 새벽부터 성당을 찾아 골목길을 헤집다 못해, 긴 다리 위를 수없이 오갔다.
일요일 텅 빈 거리를 헤매는 동양인에게 다가온 큰 키에 걸맞게 덩치 좋은, 프랑스 아줌마!
그녀 덕분에 –자녀가 없는 욜랑 덕분에 - 꿈꾼 적 없는 유학길을 뒤뚱대며 7년이나 걸어왔다.
비로소 어제 -1월 31일 - 김포공항에 도착했고.
지금 –2월 1일 -공동묘지 엄마 묘 앞에서 무릎 꿇고 있다.
갑자기 좁아진 목구멍에 걸린 굼뜬 말 대신에 성급한 눈물이 앞장서서 나온다.
이윽고 터진 말문.
“엄마가 생전에 한 보시 덕분에, 안 굶어 죽고 귀향했네. 프랑스 엄마도 생겼고.
안 서운하지?”
“ㅉㅉ”
가방 속에서 매끈하고 두툼한 종이를 꺼냈다.
묘비 앞에 꼬부랑 글로 인쇄된 학위 두 장, 보물지도인양 정성껏 펼쳐 놓았다.
“참, 엄마에게 자랑할 것도 있어.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거든. 이것 좀 봐, 봐!”
꼭 듣고 싶었던 “잘했네, 우리 딸내미!”
그 말 대신에 “ㅉㅉㅉ ㅉㅉ ㅉㅉㅉ!”
“그래도, 너무 늦게 왔지?
미안해, 엄마~!”
“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