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풍경/9강 과제/ 비유법에 대하여
나의 천성, 마치 오지랖 숲 같다.
끝없이 오지랖을 생성하는 알파요 오메가처럼 느껴진다. 천성의 숲에 거미줄을 치는 것도, 걸려들어 허우적대는 것도, 언제나 나였다. 남의 일에 관심 끄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마주치는 상황마다, 창문에 너머 세상처럼 관조하다 보면 달라질까. 차창에 기대앉은 승객처럼, 바깥 풍경을 흘려보내기로 작정했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오지랖으로부터 해방되는 구체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것 같았다. 어떻게? 생활 지침서라도 만들어야 하나?
'나의 생활 십계명’을 만들었다.
첫째 계명이 바로 ‘오지랖 금지’다. 가장 작고 쉬운 것부터, 하나씩 바꾸어나가기로 했다. 실천 사항 1호, '나의 전화 습관'부터 바꾸기로 했다. 무료한 순간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에게 전화를 한다. 허한 마음으로 집어먹는 군것질처럼. 여느 때처럼 무심코 통화버튼을 누르려다가, 겨우내 멈췄다.
“무슨 말하려고?”
“그냥, 안부 전화지.”
“그리곤?”
“사소한 이야기지.”
“왜?”
“공감받고 싶고, 또 위로도 받고 싶어서.”
스마트 폰 앞에 두고 하는 혼잣말이 늘어갈수록, 통화 횟수도 줄어들었다. 어쩌다가 통화한 후, 구멍 숭숭 뚫린 연근 닮은 내 마음을 마주 보는 것도 언짢았다. 충동적으로 전화 히지 않는 만큼, 울리는 벨소리도 뜸해졌다. 처음엔 무인도처럼 적막하게 느껴졌다. 대화 속에서 파고들던 바람소리 나는 외로움과는 사뭇 다른 고적감이었다. 처음엔 낯설었던 고적감은 점차로 익숙해지고 드디어 편안해졌다. 사람사이에서 거미줄처럼 얽힌 서운함이 사라지며, 평안해졌다. 고질병인 오지랖도 완치된 것 같았다.
콩나물시루다.
출입구에서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노약자석까지 떠밀려왔다. 아주 앳된 얼굴이 다리를 꼬고 앉아 스마트폰 열독 중이다. 원망 섞인 눈으로 기다리던 할머니는 결국 사람들을 헤집으며 다음 칸으로 떠나갔다. 아마도, 앉을자리 찾아가는 것이리라! 반면 유체 이탈된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들여다보며 킥킥댔다. 빛나는 청춘 앞에서 넋 놓고 감탄하는 평소와는 달리, 젊은 그녀에게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송곳 눈길로 정수리만 쏘아보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무슨 내용인데 저럴까? 머리를 앞으로 숙이며, 슬쩍 내려다봤다.
해독 불가한 언어였다, 중국어!
노약자석인 줄 모르나 보다.
어제처럼, 노약자석에 섰다.
긴 생머리 여자가 눈을 감은 채로 스마트폰 이어폰 열독 중이다. 그녀 바로 앞에는 ㄱ자로 꺾인 꾸부정한 할머니, 위태롭게 서 있었다. 보다 못해, 음악 삼매경에 빠진 그녀의 팔을 살짝 두드렸다. 동그랗게 치켜뜬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에게 손가락 언어를 시작했다. 맞은편 노약자 그림과 서 있는 할머니를 교차로 가리켰다. 재빨리 알아채고는 발딱 일어서서, 다음 칸으로 황급히 사라졌다.
깊은 고랑처럼 패인 주름진 얼굴, 자리에 앉자마자 할미꽃처럼 수줍게 웃었다.
“고마워요!”
“노란 좌석은 어르신 지정석이에요. 다음엔 비껴달라고 하셔요.”
“무서워서, 그런 말 못 해요. 앉아가게 해 줘서 고마워요.”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하는 바람에 민망하고 쑥스러워졌다.
내리면서, “어르신, 건강 잘 챙기셔요.”
갑자기, 내 손을 꼭 잡고 웃으셨다. 그 따뜻한 손길에 코끝이 시큰거렸다.
연달아 사흘째, 노약자 좌석 앞에 서게 되었다.
두 꼬맹이가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이다. 지팡이에 기댄 채로 한참이나 서 계시던 할아버지, 절뚝거리며 다음 칸으로 떠나갔다. 어제처럼 손짓 언어를 했다. 놀라며 일어서기는커녕, 한 녀석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최근에 법이 개정됐어요. 12살까지는 앉을 수 있어요. 법이 바뀌었데도, 몰랐나 봐요?”
제대로 앞 통수 맞았다.
“그래? 넌, 몇 살인데?”
“12살이거든요. 올해까진 법적으로 여기 앉을 권리가 있어요.”
“이런, 콩알 봐라!”할 뻔했다.
가까스로 참으며, 궁색하게 되물었다.
“금방 서 계시던 할아버지 대신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해?”
아무런 대꾸도 않고 앉아있던, 남매는 일어섰다. 텅 빈 좌석만 남아있다.
억지로 이긴 판정승!
영 찜찜하다. 그 할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도 아니잖아? 뒤늦게 밀려오는 후회와 병원 정밀 검사 후의 폭풍 같은 피로가 엄습으로 꼬꾸라질 것 같았다. 거미줄에 걸려든 벌레처럼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아까, 걔들이 뭐래요? 뭘, 보여줬어요?”
처음 보는, 생면부지의 얼굴이다.
“아~! 글쎄 법이 바뀌었대요. 현행법이 12살까진 노약자석에 앉을 권리가 있대요.”
“무서워서 자리 비껴달라고 못한다니까요! 엄마가 옆 자리에서 보고 있었어요. 그 엄마가 더 나빠요.”
“뭐, 우리 공동 잘못이지요. 눈만 뜨면, 탄핵 재판 헌법이라는 말들만 들려주었으니까요. 개정법 모르고 들이댔다고, 인권 침해 죄로 고발당하지는 않겠지요, 설마?
둘 다, 큰 소리로 웃었다. 허탈했고, 씁쓸했다.
“아까 무슨 이야기했어, 아들?”
“나더러, 노인에게 좌석을 양보해야 된다고 했어.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바뀐 법을 보여줬어.”
“역시나 똑똑한, 내 아들이야!”
낯선 대화가 서걱대며, 따라오는 듯했다. 셋의 그림자도, 고집스럽게 뒤따라왔다.
당돌하게 법적 권리를 요구하던 12살, 고꾸라질 듯 서 계시다가 자리 찾아 옆 칸으로 사라진 할아버지,
나의 오지랖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