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운더케이크

by 글바트로스

지난 11월 15일, 낯선 동네로 이사했다.

스마트폰 길 찾기 앱을 따라 찾아간 성당은 낯설었다. 낡은 외관부터, 내부도, 교우들도, 주임신부 공지도.

“이번 성탄에는 떡 케이크 초콜릿 3종류나 준비했지만, 자동차로 싣고 갈 정도는 아닙니다.”

처음엔 낯설게 들린 그 공지가 무덤덤해질 무렵, 어느새 찾아온 성탄전야.

미사시간 20 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아무리 기웃거려도 빈자리가 없다.

예전 대성전기준으로 출발했던 계산 착오가 불러들인 불편한 결과!

고운 색감 한복을 차려입은 봉사자 꽁무니를 따라가며, 제대 바로 가까이에서 성탄전례를 참관한 행운에 오히려 기뻐했다. 제대 귀퉁이에 임시로 마련된 보조 의자에 앉는 순간, 그 기쁨은 드센 바람 앞에 연기처럼 금방 사라졌다. 코가 맞닿을 정도로 높게 쌓인 박스 더미가 차단벽처럼 제대를 완전히 가로막고 있어, 마치 좁은 식자재 창고에 옴팡지게 갇힌 느낌이었다.

“참 다행이네요.”

뒤따라오며 흡족하게 소곤거리던 자매도, 금방 시무룩해졌다.


저녁 8시 정각, 시작된 성탄전야미사.

아기예수님께 경배하는 순서다. 엄숙하고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는 “찌이익”, 덩치 좋은 형제가 테이프를 찢으며 박스를 개봉하는, 반갑잖은 소리였다.

덩달아 주임신부도 큰 목청으로, “복사, 합창단, 봉사자, 순서로 나오세요!”

지시 순서대로 경배와 축하 예물을 드렸고, 구유 옆에 서있던 주임신부가 갑자기 생뚱맞게 가래떡과 케이크를 나누어주자, 더 부산해졌다. 성찬례 음식은 파견성가로 전례가 끝난 뒤, 성전 밖에서 봉사자가 나누어준다, 통상적으로.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광경에 황당한 나머지 옆자리 자매에게,

“지난달에 이사 왔는데요. 여긴 항상, 이런 순서로 진행하나요?”

잠깐 머뭇하더니 “기억 안 나요.”

그때, 앞줄에 앉았던 할머니가 서둘러 일어나서 뒤를 돌아보며,

“얼른 일어서요. 봉사자들 다음이, 바로 우리 차례요.”

순둥이 아이처럼, 뒤따라나갔다.

갑자기 들려온 크고도 퉁명스러운 목소리,

“왜 벌써들 나와요? 들어가세요. 맨 앞줄 의자에 앉은 사람부터 나오세요.”

되돌아오며 마주친 수많은 눈길에 압도당해, 죄인처럼 고개까지 숙여야 했다.

줄지어 나오는 행렬, 방금 전에 되돌아섰던 후줄근한 모습, 서로 엇갈리며 갑자기 올라오는 반란군 목소리,

“왜, 여기 왔어? 빵 먹고 싶어서? 좋아하는 크로와상, 빵가게에 있잖아? “

이미 빵을 받아간 할머니들은 벌써 변심하여 가래떡으로 바꾸려고, 허둥대며 되돌아 나오고 있다. 이런 혼잡한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떡과 빵을 나누어주며 만족한 얼굴, 두 손으로 받으며 꾸벅 절하는 모습, 전부 생경했다.


쌓여있던 박스가 소진되어 몇 개만 남게 되자, 테이프 찢는 소리와 동시에 박스가 개봉될 때마다, 앞에 앉았던 할머니도 자동적으로 일어서며, 다급한 목소리로, “꼭 떡을 받아야 해요, 나는!”

옆자리 할머니까지 합세한 이중창으로, 봉사자에게 애걸복걸까지.

“떡 받게 해 주세요. 빵 안 먹어요, 우리는!!”

봉사자의 퉁명스러운 대꾸, “나에게 말하지 말고, 신부님께 허락받아요.”

이런 낯선 실랑이가 몇 차례나 오갔다.

결국 참다못한 할머니가 되돌아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나 따라와요. “

그 무참하게 되돌아왔던 경험, 재차 겪고 싶지 않아 뭉그적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떨어진 봉사자의 조건부 허락.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뒤쪽으로 가서, 줄 선 사람들 뒤따라 나오세요. “

전혀 달갑지 않았다. 이미 고슴도치 뿔에 점화된 불꽃으로, 얼굴까지 화끈거렸던 것이다. 이천 년 성전에서 정신없이 팔고 사는 예물을 뒤엎던 모습, 생시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 앞에서 아첨꾼처럼, 쫑알댔다.

”오늘 잔치 주인공은, 예수님이지요? 주임신부도. 떡도, 케이크, 초콜릿도 아니잖아요? 전부 뒤엎어버릴까요? “ 그분은 침묵할 뿐이었다.

불꽃으로 점점 열받은 반란군들, 빙판 위의 펭귄처럼 줄지어 일어섰다????

눈앞 먹거리에 열중한 마음에도, 거룩한 아기가 태어날 외양간이 있을까?

점찍어 둔 주전부리가 바닥날까 안달하는 귀퉁이에도, 구유가 준비됐을까?

올해도 분주했던 여물통에도, 오늘 밤에는 구세주가 탄생하길 소망할까?

여기 모인 우리의 신원은, 굶주린 난민인가?


비로소 내 차례다. 두 손으로 빵을 받기에는 다소 멀었다. 오른손을 뻗쳐서 빵 봉지를 들고 돌아서는 순간,

”왜 한 손으로 받아요? 겸손하지 못하게! “

처음엔 호통소리만 들렸다. 말뜻은 자리에 앉은 뒤에야, 겨우 인지됐다.

군중 앞에서 개망신당했다는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데도, 오히려 입술은 얼어붙어버렸다. 1년에 1번 부르는 성탄 특별 찬송이나 화답송 그리고 아멘조차도 못한, 온전히 벙어리가 된 어두운 밤!

생뚱맞게 속출한 먹거리 분배로 낭비된 40분, 그 허비시간만큼 나머지 전례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성탄 축하드립니다! “대신, ”메리 크리스마스! “로 시작된 강론은 ”메리크리스마스“로, 급하게 마무리됐다.

세종대왕의 업적인 위대한 한글로, 건국 이래 처음으로 한강작가가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2024년, 서울 성탄전야미사에서 한국인 사제가 외쳐대는, Merry Christmas, 참으로 낯설었다.

표류시절, 프랑스 성탄미사에서 들었던 Joeux Noë̈l보다도, 더 생경했다.

왼쪽에 앉아서 끊임없이 불평하던 젊은 자매, 원하는 대로 가래떡을 받은 뒤에는 조용해졌다. 흡족한 얼굴로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지금부터는 조용히 하자는 사인을 보며, 홀로 무인도에 고립된 벙어리처럼 느껴졌다.


그 빵 봉지를 들고 귀가하는 길은 몹시 어두웠고, 한기까지 엄습했다.

”이 파운더케이크를 얻으려고 갔었나? “

빵가게에서 일했던 지인이 했던 귓속말,

”그 파운더케이크 사지 마세요. 팔다 남은 재고를 섞어서, 다시 구운 거예요. “

전부 그런 방식인지는 모르지만, 그날부터 파운더케이크는 먹지 않는다.

청한 적도 없는 파운더케이크를 준 뒤, 군중 앞에서 비난하던 그 목소리는 맹독 묻은 화살처럼 뇌리 속을 쑤셔댔다. 겨울 풀잎처럼 드러누운 채로,

”농부인가요? 힘겹게 수확한 밀로, 혼자 만든 빵인가요? 무상이었나요? “

영화 장면의 조폭세계처럼, 10년은 더 시퍼런 대장이 나이 든 찍새를 군중 앞에서 꾸짖던 모습, 곱씹을수록 더 거세게 올라오는 울화통에서 오직 해방되고 싶어졌다. 자구책으로 시도한 역지사지(易地思之) 시뮬레이션 장면; 내가 주는 빵과 떡을 두 손으로 받은 뒤, 만족한 얼굴로 고개 숙여 감사하는 행렬을 보며 기분이 좋다. 사랑스러운 양 떼 중에 뜬금없이 나타난 무감각한 얼굴, 감사 인사도 없이 건방지게 한 손으로 빵을 받아가는 뿔 솟은 암염소!

다소 수그러졌지만,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고 타닥거리는 잔불. 그 심지는, 바로 한 손으로 빵을 주던 모습.

”줄 때는 한 손으로, 받을 때는 반드시 두 손으로!

우렁차게 공지하지 그랬어요? 파운더케이크 달라고 청했나요? 왜, 화내요? “

*

프랑스 유학 동기가 결혼 소식을 알리려고 귀국했던 때.

그녀가 통보한 행복은 가족들에게는 청천벽력 낭보일 뿐이었다. 남자가 17살 연상은 별 무리 없이 통과되는 한국, 여자인 경우에는 허용불가 옹벽이 드높았다, 프랑스와는 달리. 더욱이 대학졸업반인 그 청년은 한국인이 선호하지 않는 후진국 출신인 데다가 피부색도 짙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녀가 처음으로 드러내는 감정 폭발에도, 천성대로 동조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쌍방이 주장하는 사랑의 진정성,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고, 3자의 중립적인 입장을 용케도 끝까지 고수했지만.

보수적인 가족들의 결사반대로 외치는 떼창으로, 한국에서 결혼한 후 정착할 계획이 무산되어 출국한 그녀, 홀로 외국에서 만혼하는 모습이 계속 어른거렸다.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박봉이던 시기였지만, 눈감고 지나가기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결국 경제적 형편의 무리에도 불구하고 한국대표라도 되는 듯, 지인에게 특별 주문한 고급인견이불을 결혼축하 선물로 보냈다. 한 달이 넘도록 기다렸지만 계속되는 무소식, 분실됐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마침내 전화를 했다. 그녀의 무덤덤한 목소리,

“2주 전에 받았어요.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돈이에요. 이불이 아니고요!”

“아! 그래요? 미안해요.”

상투적인 인사말로 서둘러 전화를 끊은 뒤, 계속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선물은, 그냥 감사하게 받는 거래요. 공짜니까요!”

비슷한 상황에서, 불같이 화내는 주임신부와 나, 이란성쌍둥이?


20분 정도 걸어가는 성당 가는 인도, 양 옆으로 낯선 글자 간판이 즐비하다. 또 다른 부주임신부는 용모와 달리 어눌한 발음으로 한국인이라고 수줍게 말하는 성전, 그날 밤에 모인 대부분이 고단한 이방인일지도, 예전 나처럼.

성탄잔치의 주인공인 아기 예수님은 거룩한 성탄전례를 선호하는 한 사람보다는, 다수가 흡족한 먹거리 잔치를 더 기뻐했을지도.

보들레르 작품의 울부짖던 시에서 '이중적인 청원'으로 석사논문이 통과된 이후로, 예리한 감성이 무디어진 줄 알았다. 박사과정에서 가톨릭 시인 잠므 작품에서 '은총의 곡선'으로 논문 통과 후에는, 아예 수그러졌다고 믿었다. 19세기 살롱문학의 전성기였던 파리로 모여드는 문인들과는 정반대 행보로 피레네 산속에서 홀로 자연을 노래했던 잠므, 그 모습과 흡사한 사막의 은수자 장세니스트와 성인 고백록에도 심취했던 시절, 그 후유증이었을까?

하필 북적대는 성탄전야미사에서, 왜 그 성인들이 만나고 싶어 졌을까?

각자 취향대로 주님의 겉옷을 입은 삯꾼이거나, 수시로 삿대질해 대는 군중의 차림새이든지 간에, 제각기 타고난 천성대로 이 땅을 순례하는 걸까?

앞서 간 분을 뒤따라가며, 서로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동행인가?

우연히 만난 우리, 서로 다른 뿔을 이해하며, 함께 가야 하는 길동무인가?

코르나 이전까지 줄곧 참가했던 서강대 예수회사제 영신수련 리더가 들려준, 그 예화가 불현듯 떠올랐다. 사람은 – 사랑하는 맘으로 연한 풀을 호랑이에게 선물로 주는 소처럼. 그 화답으로 소에게 고기를 보내는 호랑이처럼 – 각자 천성대로만, 살아가는 존재일까?


다른 해 보다 늦은, 성탄 며칠 뒤에 도착한 Annie의 소포박스.

책만(Il y a un autre Monde; 또 다른 세계가 있다) 내 몫으로 챙긴 뒤, 이사할 때 도움 준 교우들에게 전화로. ”선물 받은 것들, 나누고 싶은데요? “

내친김에 품목과 색깔도 설명했고,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사진까지 보낸, ‘소의 천성을 내려놓고 호랑이의 의향을 먼저 물어본’, 첫행보였다.

성탄전야에 뒤통수를 후려치던, 그 낯선 목소리를 피해 멀리 달아난 염소?

20년 만에 다시 찾은 절두산 성지,- 번역하던 시기에는 매일미사 참석했던 – 성전 안에 아기 예수님이 속삭인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

Je suis doux et humble de coeur..... matthieu 11;29

그 부드럽고도 익숙한 목소리에 비로소 깨어난 양!

세례 받고 살아온 40년 동안 거대해진 짱구 머리, 그 겸손한 아기 곁에 내려놓고, 절두산(絶頭山)에서 한 걸음씩 내려왔다.

파운더 케이크는 – 변질된 겸손(謙遜)으로 - 냉동고 속에 보관했다.

2025년 새해부터 한 걸음씩- Humble de coeur! - 손한 마음으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적영토에 핀, 야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