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작가 축하해! 난, 떨어졌어. 글바트로스가 뭔데?”
불꽃놀이에 신난 개구쟁이처럼, 따다닥 따다닥 재빠르게 읊어댔다.
“알쏭달쏭해. 뭔 소린지, 더 모르겠네!”
지난해 7월, 동년배 지인과 통화내용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스산한 가을바람과 겨울 냉기에 굴하지 않는 용병처럼, 다양한 낯선 프로그램 수강으로 부산하게 기울던 지난해. 그중에서 블로그 강의는, 더 생소했다. AI관련 부분은 5차원 언어처럼 알쏭달쏭했지만, 두 달 동안 버텼다. 종강 벨이 울리기 직전, 안쓰러웠던 강사가 챗봇에서 검색해 준 이삭 하나!
“끝까지, 꼼꼼히 읽어봐야 합니다. 내용 오류도 많아요.”
귓등으로 흘리며 반가운 마음으로 노트북에 저장했다, 속으로.
“프랑스에서는 ‘악의 꽃’이 대표작이고, 한국에서는 ‘알바트로스’인가?”
*
2025년, 불필요한 파일을 정리하는 중, 곁눈질로 스캔한 ‘알바트로스’.
“으응? 너무 빗나가네...”
점점 불편해졌다. 결국 3~4번째 단락에서, “ 헉!”
누군가 원문을 읽어보지 않고, - 해설과 비평 조각을 얼기설기 엮은, - 자신의 취향대로 창작한 전혀 다른 시, 시큼한 맛이 올라왔다.
하나의 원본은 다양한 번역본이 파생된다. 베틀 위의 씨줄인 원본과 날줄인 다른 언어가 만난 번역은, 씨줄과는 다른 직물처럼 느껴질 때도.
작가의 의향은 최소한 존중되기를 바라며, 챗봇 번역과 L’ALBATROS와 그리고 원문에 충실한 나의 번역, 순차적으로 첨부한다.
알버트로스(챗봇)
저 구름, 저 바람은
알바트로스를 폭풍 속으로 몰아친다.
바다에 떨어진 그의 거대한 날개는
가엾게도 배의 노처럼 뒤뚱거린다.
L’ALBATROS
Souvent, pour s’amuser, les hommes d’équipage
Prennent des albatros, vastes oiseaux des mers,
Qui suivent, indolents compagnons de voyage,
Le navire glissant sur les gouffres amers.
알바트로스
거친 심연바다 위에서 흔들리는 선박 옆으로
무심하게 따라오는 거대한 바다 새들,
선원들이 자주 재미 삼아 잡는,
알바트로스들.
한때 하늘의 왕자였던 그가(쳇봇)
이제 뱃사람들의 노리개가 되었구나!
A peine les ont-ils déposés sur les planches,
Que ces rois de l’azur, maladroits et honteux,
Laissant piteusement leurs grandes ailes blanches
Comme des avirons traî̂ner à cô̂té d’eux.
붙잡힌 채로 갑판 위로 내려앉자마자,
드높은 창공의 이 왕들은, 너무도 수치스럽게 뒤뚱거리며,
측은하게 거대한 하얀 날개를 내려놓고
선원들 옆에서 마치 노처럼 질질 끌고 있네.
순식간에 그의 명성은(쳇봇)
바닷물에 처박혀 가라앉아 버렸다.
명예도, 영광도,
그를 찬양하던 시인들도 모두 떠나갔다.
Ce voyageur ailé, comme il est gauche et veule!
Lui, naguère si beau, qu’il est comique et laid!
L’un agace son bec avec un brû̂le-gueule,
L’autre mime, en boitant, l’infirme qui volait!
이 날개 달린 여행자, 어찌나 서툴고도 무기력한 지!
예전의 그 멋진 모습대신, 너무도 우스꽝스럽게 볼품없네!
선원이 짧은 파이프로 그의 부리를 지져대고,
다른 선원은 날지 못하는 모습을 흉내 내며 절뚝거리네.
하지만 누군가 이 구름의 왕좌를(쳇봇)
폭풍우로부터 구해 준다면,
그의 거대한 날개는 다시 하늘을 뒤덮고
그는 더욱더 위대하게 비상하리라.
Le Poète est semblable au prince des nuées
Qui hante la tempê̂te et se rit de l’arche;
Exilé sur le sol au milieu des nuées,
Ses ailes de géant l’empêchent de marcher.
폭풍우 속을 드나들며 육교 아치도 비웃던
구름들의 왕자와 흡사했던 시인은
구름무리로부터 추방된 이 땅에서,
거대한 날개로 뒤뚱대며 걷고 있네.
예전에는 전율했고, 지금도 공감하는 시, 알바트로스!
보들레르(Cherles Baudelaire)의 시집 ‘악의 꽃’(Les Fleurs du mal) 수록된 L’ALBATROS는 - 날개가 2m인 ‘신화적인 새’로서- 시인의 자화상이다.
드높은 창공을 비상하던 거대한 날개, 배의 갑판 위를 걷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뒤뚱거린다.
‘악의 꽃’으로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혜성처럼, 살롱문학의 전성기를 뒤흔들며 등장한 보들레르!
출판사 임의대로, 자신의 시에서 쉼표(,)를 삭제했다는 이유로 원고를 되찾아오는 사건으로, 환대의 기류가 뒤바뀐 출판계와 비평가들의 냉대 속에서 쓴 것으로 추정된 ‘알바트로스’.
그 냉기류에 고개 숙여 손을 내밀며 다가가는 대신, 오히려 칩거하며 자신만의 표현으로 과감한 메시지를 쏟아내며, 독창적인 시를 썼던 보들레르.
“쉼표(,)도 - 글자이며 - 시의 일부다.”
이 주장에 매료됐을까?
‘문학 대학원에 입학하는 동기와 목적, 프랑스 문학사에 가장 빛나는 세기의 특징, 작가 및 작품 근거로 논증하시오’
A3용지 4페이지 분량으로 19세기 특징을 서술하며, ‘악의 꽃’을 인용한 결론으로, 대학원 입학 논술시험에 합격했다.
‘이중적인 청원’으로 - La double postulation –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니, 보들레르는 잊지 못할 은인!
이 논문의 근간은 - ‘bénédiction, élévation, correspondance –‘축복, 상승, 상응’이지만.
*
출구가 보이지 않은 원형경기장 같은 직장 생활로 탈진해 가던 즈음.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았던, 그 아이를 길에서 만났다. 낯익은 느낌으로 뒤를 돌아봤다. 일순 멈칫했지만, 곧 서로 알아봤다. 초등학교 졸업한 후에 처음으로, 몹시도 북적대는 도심 사거리에서.
어릴 적처럼, 여전히 그 야무진 얼굴 느낌 때문이었을까?
섬에서 태어난 그 아이들은, 우연히 도시 한복판에서 성인으로 재회했다.
작은 점처럼 까마득하게 멀어진 어릴 때의 추억들, 소환하는 재미로 계속 만나는 동안, 어느새 친한 동무가 되었다.
그녀의 제안대로 선물가게 ‘안데르센’을 인수한 날, 원형 경기장에서 비로소 해방되는 새처럼, 몹시도 벅찼던 날!
그 기쁜 비상은, 원형 경기장에서보다, 5배속으로 빠르게 추락했다.
상상의 날개로 신나게 퍼덕였던 비상은, 낯선 자영업 창공에서 급속도로 강하하며, 파산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안팎으로 멍든 만신창이 모습,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꿩처럼.
아무도 못 알아보는, 낯선 곳이 어딜까?
3개월 어학연수 날개를 입고, 알바트로스보다 더 거대한 비행기에 탑승했다. 오후 1시에 출발했는데도, - 13시간 30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드골 공황은 4월 1일이었다. 시차 인지 못한 못하는 알바트로스, 신세계로 이동했다는 해방감으로 더 벅찼다. 그 환희는 하루를 못 넘긴, 다음날 유리파편처럼 박살 나버렸다. 크로와상 봉지와 맞바꾼 손가방 - 3개월 생존비와 여권 및 증빙 서류가 든 가방 - 분실로 수직추락하며, 낯선 땅에서 꼬꾸라졌다.
급강하로 착륙한 프랑스 표류시절, 내 영혼 속에 살던 솔메이트 알바트로스 날개 깃털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고통스러웠던 시간.
낯선 선창 위로 떨어진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처럼, 몸보다 더 큰 날개를 질질 끌며, 생존했던 기간.
생경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수없이 수그리고 또 개미처럼 작아져야 하는지를, 체득했던 시절.
영혼 깊숙이 박혀있던 오만과 편견, 굳은살이 마모되는 겨울이었을까?
두 발로 걷는 사람으로 생환하는데, 필수적인 계절이었을까?
암튼, 무사히, 생환했다.
생존의 위험에서 한숨 돌리면서부터, 나타나는 이상한 반응.
시간이 갈수록 프랑스의 지인들의 얼굴이 점점 분명하게 떠올랐다.
울컥하는 고마움, 그 위로 덧칠되는 그리움, 마치 영혼에 새겨진 판화처럼!
폼 나게 보은 하고 싶다는 아이 같은 소망으로 출발한 매일새벽 미사, 그 청원은 메아리 없는 침묵으로.
*
땅에서 사는 동안, 교차되는 비상과 추락!
추락은, 누구에게나 고통의 구간이다.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처럼, 낯선 선창에서 조롱당하며 생존하는 차가운 계절이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무인도 같은 12월이며. 존중받지 못한, 비참한 고립감으로 하늘만 쳐다보는 날일수도.
모든 여정 속에 숨어있는 추락, 어김없이 동참하는 얄궂은 선원들.
추락으로 표류하던 시절, 가장 심하게 구박하던, 나의 세 번째 선원의 실체다.
심층 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잔인한 후렴구 ‘그 순간 직전이라면....’
선택결과로 받아들이는 대신, 꼬챙이로 찔러대며, 스스로 구박했던 계절.
가장 절실하게 듣고 싶었던 응원가, 그 누구도 불러주지 않았다. 심지어 나 자신도.
급강하 추락으로 움츠린 영혼을 위하여 부르는 응원가처럼, 수줍게 고백한다.
“‘안데르센’ 파산으로, 한국에서 추락했어요. 두 번째로는 ‘크루아상’과 맞바꾸며, 파리에서 추락했네요. 연달아 추락했지만, - 석사 및 박사과정에서 19세기 시인들인 보들레르와 잠므의 작품을 전공하며 – 비상했어요.”
지금, 무인도에 추락한, 참담한 느낌인가요?
‘알바트로스’를 떠올리며,-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쉼표(,) 순간일 수도.
영혼빛깔로 깃털 만들라고 주어진, 은총의 시간일지도.
심층 속에서 숨 숙인 영혼에게 선물할 고운 날개, 함께, 만들어볼까요?
몰이해와 비난에도 꿋꿋하게 혼신으로 쓴 작품들로, 프랑스문학사에서 곁자리를 불허하는 거성으로 우뚝 선 보들레르처럼, 한번, 비상해 볼까요?
지난해 7월부터, 마음에 드는 글자로, 깃털을 만들고 있다.
만져지는 실체로 프랑스 은인에게 보답하고 싶은 소망, 영혼의 짝인 ‘알바트로스’에게 선물하고픈 수줍음, 이중적인 청원인 양쪽 날개를 만드는 중이다.
지난해, 지인이 질문했을 때, 차마 토로 못한 본심?
“영혼동무에게, 선물 준적 없어. 다양하게 색출한 글자로, 깃털을 만드는 중이야. 생환한 영혼짝꿍 알바트로스에게, 무지개 빛깔 날개 선물하려고!
모국어 한글로 만드는 날개야, 글바트로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