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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오늘

by 글바트로스

얼마 전, 안양천에서 조깅하다가 넘어졌다. 찢어진 바지 사이로 드러난, 양 쪽 무릎에서 피가 흘렀다. 겨울 아침 강변에는, 나밖에 없었다. 앞으로 엎어진 채,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러보았다. 코는 그대로 있고, 피도 묻어 나오지 않았다. “다행이네.”

옷에 묻은 흙먼지를 대충 털어 내고, 뛰는 대신 걸었다. 입 안에 거슬리는 이물질을 뱉어내다가 혀끝에 스친 앞니, 석연치 않은 느낌이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거울부터 봤다. 끝부분이 날아간, 앞니 2개!

치과 상담실에서 길고도 아리송한 상담이 끝난 뒤, 긴 의자에 누웠다.

“4개를, 뽑다니요?”

“끝이 부러진 2개, 그리고 양옆에 크라운 씌운 2개, 포함해서요.

“4개, 한꺼번에 뽑지 마세요!”

무서운 메탈 기구를 손에 쥔 의사가, 이해불가하다는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4개, 오늘 발치해야 해야 합니다. 한 번으로, 임플란트 수술 끝내려면.”

불편한 트라우마를 꺼냈다. 4개 대신, 3개만 발치됐다.

*

갑자기 눈이 떠졌다, 새벽 2시에.

다시 자려고 애써보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오늘, 오후 3시 30분에 예약된, 임플란트 수술 때문일까?

뭉그적거리며 잠을 청할수록, 더 또렷해지는 의식에 떠오르는 의문.

어머니 제삿날인 오늘, 하필 임플란트 수술날짜로 정했나?

의사와 실랑이 끝에 3개 발치한 후, 데스크에서 제시하는 수술날짜에 고개만 끄떡였다. 입 안에 가득 찬 거즈와 공포로 얼떨떨한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 순간, 오늘 날짜 위에 그려진 동그라미가 잊힌 결과다.

계속 흔들리는 마음, 해안에 떠있는 부포처럼.

며칠 전, 꿈에서 본 어머니 모습 - 폭풍우 뒤의 가을 벼이삭처럼 쏠린 어머니의 앞니들도 – 떠올랐다.

만조 때의 거센 밀물 따라 강 상류로 올라온 숭어가 튀어 오르는 것처럼, 생생하게.

동병상련 동질감보다 훨씬 아프고도, 더 진한 회한도 함께.

눈물이 쏟아졌다, 6월 장마 끝의 실개천처럼.

거울에 비친 퉁퉁 부어오른 얼굴과는 별개로, 오히려 가라앉은 마음이다.

어머니기일 미사를 봉헌한 절두산 성지로 올라가는 중, 카톡

“오늘, 생일 맞지? 생일 축하해! “

”아~! 주민등록상 생일인데? 암튼, 고마워. “

오늘은 - 양력 생일, 임플란트 수술, 어머니 기일, - 3겹인가?

묵직한 3가지 재료로 꽉 채운, 혼자 먹기에는 버거운 샌드위치처럼.

프랑스 긴 표류시절에도 끝까지 먹어 본 적이 없는, 팔뚝만 한 바게트 샌드위치 같은 날이다.

*

그해 겨울, 오늘.

늦은 오후 5시, 막차를 탔다.

시외버스는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포장도로를 빠져나간 뒤부터, 타이어와 자갈이 맞부딪히며 격하게 덜커덩대며, 고속력으로 달렸다.

어둠 속에서 낯선 마을 어귀를 돌 때마다, 승객들은 거센 파도 위의 미역줄기처럼 이리저리 요동쳤다.

차가운 차창에 얼굴이 부딪힌 순간, 눈물에 비친 오싹한 바깥풍경!

헤드라이트의 강렬한 불빛에 먹지보다 더 시꺼먼 어둠이 양 옆으로 갈라지자, 허옇게 드러나는 신작로!

쪽 친 검은 머리의 가르마처럼, 번쩍거리며 쏜살같이 달려오는 자갈길!

양 옆으로 늘어선 야산들도, 병풍처럼 줄지어 쫓아왔다. 나뭇잎 없는 벌거숭이 가지들이 광풍에 휘둘리는 모습, 망자의 춤사위 같았다!


아침 출근 전, 거울 앞에서 꼼꼼하게 화장한 얼굴 위로 범람하는 눈물!

손등으로 닦아낸 마스카라와 뒤섞인 눈물, 덜 갈려서 곱지 못한 먹물 같았다.

점점 더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에 거들 난 일회용 휴지, 손수건이 필요했다. 가방 속에는 손수건 대신, 묵직한 뭉치가 손끝에 와닿았다.

부회장 특별 지시로, - 긴급하게 지급된,- 장례비가 외치는 듯했다.

“너그어매, 죽었어!”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 옆 좌석 승객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살얼음 낀 유리창에 얼굴을 맞대며, 등짝만 보이게 돌아앉았다. 속으로 웅얼거리며.

“아름다운 겨울야경, 놓치고 싶지 않네요.”

오후 3시, 사촌 올케로부터 온 전화.

“고모야, 어무이가 아까 갑자기, 그만 돌아가셨다. 안 들리나?”

그 순간, 말문이 막히고, 눈물길이 열렸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방금 들은, 그 끔찍한 비보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잠시, 기절했을지도.”

“우리 막둥이, 어매 죽은 줄 알고, 얼마나 놀랬을꼬? 잠깐, 혼절했었지. 이제, 너그어매, 멀쩡하다. 뭐, 묵고 싶나? 애미가 죄다 만들어 줄게.”

이런 애절한 염원과 함께 역주행하며 떠올린, 3일 동안이다.


그제, - 자정 가까운 시간에- 고향집에 도착했다.

마루에 올라서면서부터, 피곤한 나머지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어디가 아픈데요?"

겨울나무처럼 깡마른 몸에서 흘러나오는 날숨처럼.

“윗동네 의사가 부분 틀니를 해야겠다며, 앞니 4개를 뽑더라. 그때부터 열이 펄펄 끓고, 밥맛도 떨어지고, 기력도 딸리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입맛 도는 음식 챙겨 먹으면, 금방 괜찮아져~“

동네에서 유일한 그 의사는 – 면허증을 내걸지 않은 - 초등학교 동창생 아버지다.

”아니 한꺼번에, 4개나 발치해요? 미친 XX! 언제 뺐는데요? “

”지난번, 부산 갔다 온 다음날이지, 아마. “

”아니, 뭐가, 그리 급해서요? “

새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것은 , 급하게 발치시킨 만든 그 장본인이, 바로 나였다!

열흘 전, 막내딸보다 더 나이 많은 손주 혼음식 총괄지휘하려고, 앞당겨 부산 왔던 어머니.

잔치가 끝나자, 서둘러 귀향하는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올해는 결혼해야지. 벌써, 스물다섯인데. 사람은 있나?”

대놓고 물어본 적 없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반드시 확답을 들어야겠다는 단호한 눈빛에 압도되어, 정답대신 던진 회피성 농담.

“앞니가 삐뚤어진 할매, 누가 장모 삼고 싶을지, 모르겠네.”

민폐에 질겁하는 양반 딸이라는 자존감으로, - 아무도 관심 없는 신원인데도 - 버틴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그 순간.

개구쟁이가 심심풀이로 던지는 돌멩이처럼, 조심성 없이 툭 던진 말, 어머니 별병의 원인이 된 셈이다.

어머니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로 도란거리는 바람에, 겨울밤은 짧았다.


어제, - 여전히 핏기 없는 얼굴이지만, - 기운을 되찾은 것 같았다.

아침부터 서둘러 출발 준비하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갑자기

“우리 막둥이, 애미랑 하룻밤만 더 자고 가면, 안 되나?”

“우리 어매, 얼아(어린애) 도로 됐나 봬.”

처음 듣는 부탁에 움찔했다. 잠깐 머뭇거리다가, 선심이라도 쓰듯이.

“하룻밤은 안 되고. 점심은 함께 먹고, 갈게요.”

그리고 연달아, 바쁜 일상에 대하여 조목조목 읊어댔다.

“매일 새벽 6시 30분까지 회사에 도착합니다. 업무시작 전 8시까지, 회장실과 중역실 4개를 점검해야 하거든요. 오후 5시 퇴근시간까지, 후딱 지나가요. 신조선 시운전 날은, 더 바빠요. 일요일엔 통역하고. 구정대목인 요즘, 엄청나게 바빠요. 국내외 귀빈에게 보낼 선물들 발송하던 중인데, 어매 땜에 왔네요.”

속사포로 쫑알대는 막내딸의 막중한 업무에 대견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쓸쓸한 얼굴이다.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이상하리만큼 망연한 표정으로!

“내일모레글피 3일만 지나면, 우리 어매 근사한 선물, 잔뜩 사가지고 올게요. 올케 엄니, 사돈 할매, 몫도 챙겨서요. 구정에 오면, 5일 동안 함께 먹고 자며, 실컷 이야기합시다요. 어매~! ”

체념하는 그 처연한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선심성 점심을 대충 먹고는, 급하게 출발했다.

버스 속에서 자꾸만 맴도는 목소리.

“우리 막둥이 하룻밤만 더, 애미랑 함께 자고 가면, 안 되나?”

줄기차게 들려오는 그 불편한 메아리 뒤로, 초등학교 등교 첫 날도, 겹쳐 떠올랐다.

“니랑 함께, 학교 못 간다. 무슨 일이든지 열 번 생각하고, 혼자 결정해라.”

“아니, 여장부 같던 그 단호한 모습, 도대체 어디로 갔나? 갑자기, 노인네처럼, 왜 그럴까?”

어제 밤늦게, 부산에 도착했다.


오늘, -평소보다, - 일찍 출근했다.

“오후 3시에, 어머니가 죽었다고?”

예전 초등학교 입학 날, 낯선 그곳에 도무지 가고 싶지 않았던, 꼬맹이.

수업시간 동안 몸만 교실에 남은, - 재발한 뇌졸중 수발에 지친 어매가 혼자 도망가는 장면으로 - 유체 이탈된 상태였다. 마침내 종례가 끝나자, 그 아이는 자갈길 신작로를 달리기 시작됐다. 대문을 통과하고 마당에 들어서면서부터, 헐떡이며 소리쳤다.

“엄마아~, 엄니이~, 어매~ 어무이~!”

”우리 막둥이 왔나~!

화답소리가 들릴 때까지 불러대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찾아다녔다.

뒤 안에서, 동네로, 냇가 돌다리 건너 밭으로, 선산 안의 다랭이 논배미까지.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짧아진 구간, – 인적 없는 골목길에서부터, - 여전히 계속되던 달리기.

더 이상 큰 소리로 어매를 부르지 않고, 달음박질도 멈춘, 그해 겨울 오늘!


읍내에서부터 타고 온 택시에서 내렸을 때, 온 동네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칠흑 같은 속에서, 오직 그 기와집을 에워싼, 시린 불꽃 덩어리!

유년시절 고집부리다가 대문 밖으로 내쫓겼던 밤, 소리 없이 에워싸던 그 암흑보다도, 훨씬 더 무서웠다.

공포로 얼어붙은 두 발은 땅바닥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목숨을 빨아먹는 눈동자처럼, 기와집 위에서 번뜩대는 광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문 앞에서 맞닥뜨린, 망자를 위한 마지막 밥상!

버스 속에서 염원했던 그 부질없는 요행, 잔인하게 비.웃.듯.이!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말없이 들어섰다. 마당에 걸린 가마솥에 불을 지피던 옆집 아지매가.

“아이고~ 이 집, 막내딸 오네. 애지중지하던 그 딸이 오는 줄도 모르고. 저 막둥이가 눈에 밟혀서, 우찌 저승고개를 넘어 갈꼬 ~”

프랑스에서 ‘마지막 황제’ 영화 관람 후, 비로소 조금이나마 이해됐던 종손과도 대면했다. 여전히 퓨이 황제처럼 유순한 얼굴로, - 아홉 살 더 많은 종갓집 유일한 아들은, - 대책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버스 속에서는 전혀 달갑지 않았던 그 조의금 덕분으로, 체증되었던 장례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핏기 없이 차가운 어매 볼에 얼굴을 비벼대며, 두 손을 꼭 잡은 채로, 모든 신들을 호출했다. 생전 어매처럼, 밤새도록 부처님과 천지신명까지 호명하며, 애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섬마을에 휘몰아치는 겨울높새바람의 거친 휘파람소리와 마른 대나무들의 서걱거림이 동시에 잦아드는 동틀 무렵, 기와지붕 위에서 누군가 외치는 3창.

“김행 김 씨, O O O 혼, 이승을 떠나갔네!”


소우주가 – 내 존재의 ‘알파요 오메가’였던 어매가 – 소멸된 날.

기와집 제비둥지가 축담으로 떨어졌던 그 봄날, 부화를 기다리던 알이 무참히 깨.지.듯.이!

껍질 속에서 꼼지락거리던 하얀 꿈도, 녹색 활기도, 푸른 비상도, 금빛 성공도, 함께 박살 난 날이다.

망망대해 무인도처럼 떠있던 어매가 저승으로 가라앉은 날, 신조선 도면보다 더 면밀하게 그려놓은 미래 청사진도, 심해 속으로 수장된 그날!

심층 속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던 짓궂은 장난도, 농담도, 웃음도, 동시에 가라앉았다.

지구상에 잔존하는 모든 형체, 흑백영화처럼 변색된 날이다.

25살 초록 눈이 죽고, 65살 회색 심안이 열린, 그날!

그해 겨울,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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