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태풍으로
시커먼 심연에 수장된 영혼
서둘러 붉은 동백꽃으로 피어나면,
먼 하늘 쳐다보던 어매도
앞산 연분홍 진달래로 돌아온다.
곡괭이로 일군 다랭이 논
낫처럼 굽어져 김매던 늙은 아배,
청 보리 사라진 논배미 가득
샛노란 유채꽃으로 되돌아온다.
이승 떠난 서른셋 고운 얼굴
병아리 셋 사는 손때 묻은 집으로 돌아와
낮은 돌담 너머, 높은 가지마다
하얀 목련으로 기어코 피고야 만다.
뜬금없이 낙태된 영혼
길 잃고 헤매며 흘린 눈물방울
가지마다 자지러지게 매달리며
이레도 못 버틸 벚꽃으로 태어난다.
움트기도 전
연녹색 잎사귀 생기기 전
꼭꼭 여민 나무가슴 풀어헤치며
차마 못다 한 말 쏟아내는 영혼처럼
봄마다 소리 없이 꽃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