童心의 전령일까?
“주님이름으로, 그들이 먹튀 할 때, 뭐 했어요?”
그들이 -장로 부부와 목사가 -떠오르는 순간이면, 맨 먼저 터져 나오는 볼멘 후렴구다.
'먹튀 팀', 간판주자인 장로부부는 사내 커플로서 나의 십년지기 동료였고, 여자는 절친?
그들은, 여전히 잠수 상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들이 떠오르지 못하도록 망각의 늪속으로 계속 쑤셔 넣는 것뿐이다.
방심하는 그 순간,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들!
가슴 밑바닥에부터 서서히 깨어나는 울화, 마치 폭풍 전야 대나무잎처럼 서걱댄다.
토씨 그대로의 다감했던 말들이 메아리치면, 곧바로 용암 같은 분노도 높이 치솟아올라 분출한다.
시뻘건 말들을 토해내며, 터벅터벅 걷던 중이다.
저건, 또 뭐야? 설마?
유년시절의 야무지고 당찬 짝지와 물물교환으로, 처음 만져봤던 귀한 존재!
눈에 띄는 대로, 몽땅 꺾었다.
미사 후, 배웅인사하는 본당 원장 수녀님 앞에 섰다.
약간 멈칫거리다가, 마침내 겸연쩍게 내밀었다.
“어머나! 세상에, 네 잎 클로버네!”
전혀 예기치 못한 갈래머리 소녀 같은 탄성, 푸른 수국처럼 고운 웃음이다.
“두 분 수녀님께 전해 주세요.”
“직접 주면, 더 좋아할 거예요.”
“어디 계셔요?”
“성전 안에서, 제대 정리하고 있어요.”
두 분도 동일한 탄성으로, 연분홍 수국처럼 수줍은 미소다.
“어머나! 세상에, 네 잎 클로버네!”
'먹튀사건' 이후에 생긴 사람 기피증에도 불구하고, 내친김에 성당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눈에 띄는 낯익은 얼굴부터, -가장 예쁜 잎부터, - 나누어 주었다.
뜬금없이 건네는데도, 고맙게도 하나같이 기분 좋은 ‘솔’ 톤으로.
“어머나! 세상에, 네 잎 클로버네!”
토요일, 절두산 성당은 콩나물시루다.
누군가, 멍하니 서 있는 나를 향하여 손짓했다.
그녀가 내어 준 자리에 앉으며.
"고맙습니다."
"당연히, 함께 앉아야지요."
"손 펴봐요."
"어머나! 세상에, 네 잎 클로버네!"
그녀가 매일미사책을 펴서, 내쪽으로 내밀었다.
"왼쪽 눈이 잘 안 보여요. 그래서 수술해야 해요."
" 어머나, 어떡해! 언제 수술해요?"
"다음 주, 금요일 오전 9시요."
"세례명, 좀 알려 주세요."
"왜요?"
"그 시간에, 꼭 기도할게요."
봄날 아침, 우연히 발견한 네 잎 클로버 군락지!
한 줄기에만 네 잎 클로버가 촘촘하게 있는 모양, 참 신기했다.
아무리 작은 생명체라도 이미 정해진 DNA가 있다고, 넌지시 알리는 암시처럼.
네 잎 클로버, 낯선 사람에게까지 겁 없이 나누어준 5월!
예기치 못한 귀한 선물이라도 받은 양, 그들은 고맙게도 반가운 탄성으로 화답했다.
세월바람에 나무껍질처럼 골패인 주름진 얼굴로 수줍게 웃으며, 손가락 하트도.
누군가는 초승달 같은 눈으로, 순박하게 웃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행운을 빕니다!"
진심으로, 나도 동일한 마음이었다.
네 잎 클로버, 童心의 전령일까?
나눠주고, 남은 잎들을 꺼냈다.
전부 하나같이 숭숭 구멍 뚫렸거나, 크기가 들쑥날쑥한 것뿐이었다.
몽땅, 쓰레기통에 버렸다.
보존 가치가 없다고 버린 네 잎 클로버, 갑자기 나처럼 여겨졌다.
그들이 ‘먹튀’한 날, 내 영혼에 생겨난 구멍은 여전히 뻥뻥 뚫려있고,
수시로 엇갈리는 감정으로 - 치솟는 분노와 내리 꽂히는 자책도 - 들쑥날쑥한다.
'어떤 상태이든지 간에 버려고 싶지 않다'는 뜬금없고도 이상한 충동이 느닷없이 밀고 올라왔다.
쓰레기 통에서, 다시 꺼냈다.
한 잎씩 곱게 펴서, 마치 귀중한 보물인양 불어성서 속에 보관했다.
귀국 직전에 바오르 수녀님이 선물로 준 값비씬 플레이드 판 성서, 그녀 재산목록 1호(?)로, 미리 받은 유품일 것이다.
53년의 연차에도 불구하고, 주일 소꿉동무였던 그녀, 천상 소녀였다.
성심 수녀원 정원에서, 서로 의견이 엇갈린, 그날!
“크고 예쁜 송이는 따 먹지 마요. 다른 사람 몫으로 남겨두어야 해요."
‘뭔 바보 같은 소리야? 잘 익은 큰 송이부터, 따 먹어야지’,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마지못해 동참했다.
그날, 쪼매 물들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