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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나온 날

by 자겸 청곡

아들집은 아파트 단지 맨 뒷 동으로 산과 바로 접해있고 8층이라 현관 옆 창문과 주방 창문으로 숲이 바로 보인다.

숲아래 경사면을 따라 아파트 담을 둘러쳐서 숲에서 아파트로 넘어오지는 못하는 지형인데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따스한 날이면 고라니 한 마리가 빛 쬐임을 하는 것을 몇 년째 본다.


어제는 며느리가 고라니 왔다고 하길래 얼른 가서 보니 늘 보던 자리에서 더 아래쪽으로 해가 잘 드는 곳에 앉아있다. 숲색과 같아서 찾기도 쉽지 않지만 몇 년째 빛쬐임을 하던 그 고라니 보다 덩지가 작고 어려 보였다. 겨울 동안 먹지를 못해 말라서 그런가 싶어 카메라로 댕겨서 찍은 사진을 보니 그렇게 말라 보이지는 않는 것이 아무래도 새끼 고라니인 듯한데 새끼 고라니라면 엄마는 어디 가고 혼자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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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습성을 찾아보니 무리를 지어 다니기도 하고 주로 산기슭에서 서식하고 처음 있던 곳을 멀리 떠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지금 앉아 있는 곳이 혼자 지내기에는 최적의 장소인듯하다.

경사지고 외진 숲이라 사람 눈에 잘 띄지 않고 햇빛 잘 들고 경사지긴 했어도 중간중간 평지로 다져진 곳이 있으니 내려와 쉬기 좋은 곳.

그렇다면 엄마가 빛쬐임 하던 곳에서 새기를 낳고 거기서 성장한 새끼가 독립을 해서 다시 그 자리로 찾아온 것인지 궁금해진다.

손녀도 어릴 적부터 고라니가 나오면 창문가에 들어 올려서 보여주었기에 반갑다면서 끼익 끼익 소리를 내는데 도망도 가지 않는다. 그만큼 그 자리가 안전지대인 것을 아는 듯하다.

겨우내 보이지 않더니 햇살 따스한 날 나온 고라니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어서 구박데기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는데 떼로 다니지 않고 혼자 저리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짠하고 먹이 주는 사람도 없을 텐데 찬 겨울을 어찌 지냈는지 안쓰럽기만 하다.

엄마인지 새끼인지 모르지만 구박데기로 자라지 말고 숲에서 먹이 찾아가며 어디 가지 말고 부디 건강하게 자라라고 축복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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