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는 춤추기를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율동을 즐기더니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아이돌이 꿈이라며 부쩍 더해져 길을 걸을 때도 흔들며 다니고 길거리 상가의 커다란 유리창이나 거울만 보면 멈추어서 춤을 추고 간다.
연일 TV에서 보여주는 K-POP의 영향인듯한데 혼자 추기보다 짝을 이루어 추려다 보니 놀이터에서는 친구들끼리 한데 어울리고 집에 와서는 내가 파트너가 되어야 하기에 쉽지 않은 동작을 따라 하기도 어렵고 몸이 따라주질 못해 춤이 아닌 다른 놀이로 유도하려 해도 그때뿐 잠시 후에는 다시 춤 놀이를 하자고 해 곤혹스럽기도 하다.
요즘에는 ‘탕후르’라는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데 노래도 모르려니와 처음 듣는 이름이라 인터넷을 찾아보니 ‘탕후르’는 과일에 설탕물을 입혀 만든 중국 간식이고 ‘탕탕탕 후르 후르’ 하면서 총을 쏘는 동작이 들어가는 춤과 노래가 초등학생들 사이에 인기라고 한다.
며칠 전, 거실에서 손녀의 춤을 따라 배우는 중에 식탁에 앉아 있던 남편이 ‘탕탕탕’을 따라 해 한참을 웃었는데 다음 날 아침, 손녀가 거실로 나오면서 춤과 함께 아침 인사를 하자, 남편이 ‘설렁탕’ 춤을 추는 거냐고 물었다. 평상시에도 워낙 농담을 즐기는 성격이라 장난으로 ‘탕후르’를 ‘설렁탕’이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름이 낯설고 깜빡해져 가는 기억력 때문인지 전날 밤에 보았던 춤과 노래 제목 중 ‘탕’만 생각이 나서 그랬던 것으로 ‘설렁탕’을 들은 손녀의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며 따라 웃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할 때 ‘예술의 전당’을 ‘전설의 고향’이라고 한다거나 ‘메리어트 호텔’을 ‘런닝구 호텔’이라고 해도 기사님들이 알아듣고 데려다준다면서 노인들의 기억력 감퇴를 우스갯소리로 여기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가 그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지고, 더구나 남편은 술 담배도 하지 않고 나이에 맞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라, 뇌 건강이 좋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당혹스럽고, 나이와 기억이 반비례되면서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깜빡 증이 지나쳐 치매로 가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
몇 년 전 신경외과에서 뇌 사진을 찍을 때 깨끗하다고 하면서 현 상태를 유지하려면 책을 많이 읽고 즐겁게 살라기에 글쓰기를 하고 조약돌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까 매우 잘하는 일이라고 칭찬을 들었기에, 남편에게도 의사의 권고를 알려주면서 뇌 건강에 신경을 쓰도록 해 평시에도 본인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메모 습관을 잘 유지하는데도, 순간적으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어 전날 밤에 들은 ‘탕후르’를 이튿날 아침 ‘설렁탕’이라고 말하게 되는 현실이 아프게 다가온다.
손녀가 3월이면 초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데 보고 배우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는지 자기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 손녀 눈에도 우리의 늙어가는 모습이 느껴져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자녀 출산이 줄고 자녀를 출산하고서도 직장을 나가는 부모가 많아지면서 노인들이 손주들을 돌보아야 하는 가정이 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건강해야 손자 손녀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받아주며 자연스럽게 삼대가 어우러지는 가정이 될 텐데, 새 문명에 뒤처지고 손주조차 돌보아주지 못하는 노인으로 취급되지는 않는지 자신을 돌보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렇다 할 방안이 마땅치는 않다.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손녀를 보러 올라와서 머무는 며칠 동안 남편의 일과는 근처 노인들과 만나는 것이 전부로, 아침에 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고는 곧바로 아파트 아랫동네 근처 빵집에 가서 노인들과 만나는 사회생활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들 집 동네에는 젊은 자녀들과 함께 거주하지 않고 둘만 사는 노인 부부가 많아서인지 간단히 빵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아침을 보내는 조찬모임 인듯하데 우연히 남편이 아침에 빵을 사러 들렸다가 알게 돼 참석한 후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참석자 중 본인이 가장 젊은 나이이고, 80세가 넘으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으로, 젊은 시절 어떤 일을 했건 나이 드니 기력 떨어지고 몸 아픈 것도 문제지만 하루 종일 오갈 데 없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하시는 말씀에 공감이 간다고 한다.
그렇게 조찬모임이 끝나고 나면 정오쯤에 집에 와서 식사하거나 밖에서 김밥 등으로 간단히 점심을 마치고, 이번에는 윗동네로 올라가는데 윗동네는 조찬모임과 달리 동네 토박이 어르신들이 모여 장기와 바둑을 비롯해 게임도 하고 간단한 운동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모임으로 아파트 내에 경로당이 있음에도 따로 밖에서 모이는 분들이 많다.
이렇게 아들 집을 중심으로 아침에는 내려갔다가 오후에는 올라가는 동선이라 자연스럽게 걷기 운동이 되기도 한다고 하지만 이런 모임과 만남이 사회성 유지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뇌가 활성화되기에는 역부족일 듯하다. 주민 센터에서 시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고 노인 활동을 위한 움직임이 많아진다 해도 남편처럼 동네 모임을 즐길 뿐 실제 참여하는 숫자는 얼마나 될지.
하루 전에 들은 탕후르를 설렁탕으로 헷갈리는 기억력 감퇴를 늦추고, 빠져가는 근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이 필수임을 알면서도 머리와 행동이 따로 놀고 느려지는 노년기, 평균수명이 는다는 것은 육체적 생명 연장에 대한 수치일 뿐이니 당당하게 활동하고 정상으로 지각하는 노년이 되도록 읽고 쓰고 즐기면서 이웃과 통교하고 웃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하루가 되도록 계획을 세우고,적극적 자기관리를 통해 손녀의 바램처럼 오랜 날들을 함께 할수있도록하자고 더 설득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