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어진 나를 연구해 보기로 했다

잘되야 될 텐데.

by 이녹



내가 유일하게 초심을 잃지 않은 분야가 있다면, 바로 운전이라 하겠다.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 면허증을 처음으로 갱신했음에도 여전히 능숙함과는 거리가 있다.

어깨 쪽이 빳빳하게 얼어붙곤 했던 극초보시절에 중, 약 정도의 사고를 서너 번 겪고 난 후 한동안 다행히 무사고 몇 년... 이제 운전쯤이야! 그러고...... 있었다.




지하 주차장이 없는 이곳은 나이가 많은 아파트, 대신 그만큼의 시간을 같이 한 오래된 나무들이 숲처럼 둘러싼 조용하고 때로는 아늑한 분위기다. 배려가 곳곳에 배어있는 - 이를테면, 주차 시 옆차를 위해 여유 있게 공간을 남겨두는 것 - 그리고 앞동의 경비아저씨가 다리 하나가 불편한 누룽지색 고양이의 밥을 어떤 요란한 애정표현 없이 무심하게 챙겨주시는 풍경이 있다는 것.

그 고양이가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 전에 살던 집 골목의 길고양이들이 거리를 걸을 때 늘 불안한 눈초리였던 것만 봐왔던 터라 - 대부분의 길고양이들의 현실이겠지만.....

응, 지나가니? 나른한 표정과 몸짓으로 주차장을 누비는 고양이가 산다는 것

또 하나, 매주 엘리베이터 안에 새로운 시 한 편이 올라와 있다는 것, 복사본을 가지고 매주 열람판에 넣는 그 손길과 정성에 시를 안 지 얼마 안 된

나는 초롱초롱한 눈빛 - 아닌가?- 으로 시구절을 읽어나가곤 한다.




각설하고

이사하고, 두 달쯤 지나서였던가? 비좁은 주차공간에서 후진과 직진을 번갈아 반복하다가 앞에 차를 아주 살짝 건드리고 말았다. 올초 비슷한 강도로 주차된 벤츠를 건드렸을 때는 후에 연락도 따로 없이 지나갔는데, 여차여차 이 차주와는 10만 원에 - 기존의 스크래치를 구실 삼아 - 합의를 보게 됐다. 문득, 미안하다거나 그냥 지나가 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한, 아니 안 했던 벤츠차주에게 뒤늦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10만 원 덕분에 느슨해 있던 어깨가 오랜만에 살짝 긴장모드로 전환됐다.

출근길 학교 방향이 같은 둘째를 태우고 차를 빼려고 들어갔다 나왔다를 무한반복하는 기분이 들 때쯤.

차에 탄 한 여자분이 출발은 안 하고, 자꾸 나를 보는 것이었다. 급기야 차 창문까지 반쯤 내리고서.

왠지... 아니 원래 예민한 성질에다가 살짝 짜증이 나 있던 나는

뭐야, 남의 차 긁을까 감시하나?

올해 오십이나 먹은 나는 잠깐 기분 나쁜 눈빛을 보냈다.


그때, 갑자기 차에서 내린 - 검은 원피스에 진주목걸이를 한 - 여자분이 내 차 앞으로 성큼성큼 오더니 말했다.

"오라이, 오라이. 충분해요" 자연스러웠다.

안심하라고 친절하게 손짓도 병행하면서 말이다.

그러자 양옆 여유공간이 5센티로 보였던 통로가 오라이라는 말에 바닷길이 열리듯 뚫리고, 드디어 무한 늪지대를 빠져나오게 되었다.

무안함인지 미안함인지 기쁨인지.

창문을 내리고 어정쩡한 눈인사와 목례를 하면서 "고맙습니다" 하는데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옆자리의 아들에게 "어휴, 창피해라. 엄마는 진짜 마음이 삐뚤어졌나 봐...... " 출근길, 무안해진 나는 엄마는 마음이 삐뚤어졌나 봐라는 문장을 무한반복하고 있었다.




의도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 이야기가 섞여 어수선한 맛이 있네.....

글의 주제는 나이 오십에서야 삐뚤어진 내 마음을 진심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발단은 심리학에 관심이 부쩍 많아진 근래에 진주목걸이 한 여자분이 불씨가 되었을 터다.

이제껏 누르면 용수철처럼 튕겨 나오는 잘못된 무의식적 해묵은 반응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20대 시절, 개명 안 하면 급사한다는 소리를 두 번이나 들었었다. 장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상관은 없지만 앞으로 얼마나 살지, 이 튀어나온 모난 돌들을 이제라도 조금씩 다듬어 갈 수 있다면 스스로 덜 괴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 득 들었다. 시간이 꽤나 걸리겠지만, 아마...... 백 년 안에는 충분히 해낼 수 있...... 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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