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들의 무게

적게, 간소하게

by 이녹


갑자기 혼자라도 원룸을 얻어 뛰쳐나가려고 했던 작년 여름쯤과 이번 이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까지 다른 이들이 사는 집을 여덟 곳인가 봤었다. 본의 아니게도 그것은 집을 구한다는 명목하에 구경 혹은 관람이었다. 원룸을 보러 다닐 때는 안경을 쓴 깐깐해 뵈는 부동산 아주머니와 세 곳인가를 봤는데, 마지막 집을 보러 갈 때는 '어찌하여 그 나이에 원룸을 보러 다니나.' 처지가 참 안 됐다 하는 것 같기도 하다가 죄다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자 약간 짜증스러운 말투로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랬었다. 그때는 이혼소송은 할 용기가 없어 별거라도 할 요량이었지만 그것도 한참 부족한 용기일 뿐이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사는 집을 보러 다니면서 새삼 기억에 남는 점이 두 가지 있다.

깐깐해 뵈는 아주머니와 첫 번째 집을 보러 간 날이었다. 아주머니 외에 한 명이 더 와 있었는데 원룸주인이라고 했다.이른바 건물주.

신축건물이라 깨끗하고 시설은 좋았지만, 왠지 숨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놀랐던 건 방문을 열어준 주인이 (나이도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거나 그리 보였다 ) 세입자가 쓰는 냉장고를 - 물론, 옵션이니 주인 것이긴 하나 - 아무렇지도 않게 열어보면서 마치 방을 치우지 않고 사는 아들을 타박하는 듯 "청소도 제대로 안 하고, 냉장고도 텅 비어있고..... 이 아저씨는 무슨 일을 하는지 잠만 자러 들어와."

집주인은 어디서 받았는지 모를 특권의식으로 월세도 딱히 밀리지 않았을 아저씨의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벗기고 있었다.



이후,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는 아파트를 몇 군데 보러 다녔었고 지금의 이 집을 만나게 됐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상황상 부분이사를 했고, 전자제품은 몇 년째 잘 쓰고 있는 통돌이 세탁기 한 가지만 데리고 왔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인 것이 거의 없어서 온라인구매가 연이어지자 이사 후 며칠 동안은 문 앞에 택배상자가 몇 개씩 놓여있곤 했다. 정작 필요한 것만 장만하자..... 에서 남들이 다 쓰니까, 혹은 기능보다 외양이 예뻐 보여서 선택받아 온 것도 몇 개 되었다.



두 번째 기억에 남은 것은 사람들이 데리고 사는, 아니 사람들이 사는 집이 아니라 물건들을 위한 집이 아닌가 싶은 만큼 꽉 들어찬 저마다의 모습이었다. 좁은 원룸에서도 넓은 아파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엄청 나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 이사를 해서 주거환경도 바뀐 참에 말로만 듣던 혹은 동경했던 미니멀라이프로 살아보고자 하는데, 그 마음이 어쩌면 삐걱대고 있는 건가.

몇 해 전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도 끝나고, 가족들은 따스한 겨울 햇살이 있는 이른 오후 집 뒤 작은 밭으로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숨어있던 각종 유품들을 꺼내오고 있었다. 옷이 대부분이었는데 눈에 익은 몇 벌을 제하고는 새것으로 태어나 한 번도 입혀보지 못한 채 서랍 속에서 생을 다한 것들이 수도 없었다. 조카들과 내 아이들이 품에 안고 나른 옷가지들은 어느덧 밭 중앙에 작은 동산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거센 불에 타 들어가는 옷가지와 하늘로 올라가는 하얀 연기를 보고 있자니 아버지의 모든 것이 떠나는 듯해 슬프면서도 왠지 후련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가 이 숨어있던 옷가지들의 무게에 짓눌려 계셨던 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나는 여행캐리어를 눈에 띄는 곳에 두고 살아요. 머무는 삶이 아니라는 것,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어느 수필책에선가 본 내용인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이번에 나도 거실 TV다이 옆, 언제나 볼 수 있는 자리에 그것들을 두었다. 다음번 이사할 때는 저 캐리어에 모든 살림이 들어갈 만큼은 물론 말도 안 되지만, 사는 동안 줄이고, 버리고, 최대한 불필요한 것들의 유혹을 떨쳐내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한 덤덤하면서도 굳은 결심이라고도 하겠다. 물건들의 무게에 에너지 뺏기지 않기.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다는 여행의 설렘은 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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