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는 부디 간단하게

그리고 조용히

by 이녹

타인의 말과 태도에 감정이 들락날락하는 일을 줄여가는 것도 어쩌면 마음공부의 한 부분 아닐까.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피곤에 찌든 날일수록 타인의 말과 행동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곤 한다.

한 달에 한번 춘천요양원에 계시는 엄마를 뵈러 간다. 큰언니가 근처에서 자주 찾아봐주어 늘 고맙고 안심할 따름.

천안에서 용산까지, 용산에서 다시 청춘열차로.....

지역이 지역인지라 춘천 가는 기차에는 관광객이 많아 보인다. 그리고 청춘열차는 중간 기차 몇 량이 2층으로 되어 있어서 처음 그것을 봤을 때 얼마나 신기했던지. 좌석을 찾으러 가면서 짧은 타원형 지하계단으로 내려가거나 2층 복층 계단 같은 것을 오르거나......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엊그제도 엄마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춘천역에서 기차를 타서 통로자동문이 열리고 앞줄 자리를 보니 내 자리 옆에 녹색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 작은 소리가 아니었다 - 통화를 하고 있었다.

피곤이 쌓여있던 나는 옆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서 통로에 있는 자유석에 그냥 앉아버렸다. - 왜 나는 큰소리로 통화하는 타인을 큰 불편함과 스트레스로 받아들일까 생각해 보니 전남편이 큰 목소리로 꼭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것이 트라우마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 하지만 등받이가 불편해 영 자세가 나오지를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 아직도 통화 중인 여자 옆에 불편한 기색을 얼굴로 최대한 드러내며 자리에 앉았다. 소음에서 나의 귀를 보호 중인 소중한 블루투스 이어폰을 하나씩 빼서 괜히 후후 불어내거나 크게 기지개를 하거나....... 통화는 내가 앉고 나서도 5분 정도는 더 이어졌던 것 같다.

여자가 통화를 끝내자 기다렸다는 듯 안쪽에서 비즈니스용 내용으로 중년의 남자가 통화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음....... 모지? 나는 음악의 볼륨을 더 키우고 잠을 청하기 위해 몸을 의자에 최대한 밀착시켰다.

중간쯤 눈을 떠서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데 옆자리의 여자가 몸을 창가 쪽으로 최대한 웅크린 채 -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었는지 기차 안은 살짝 추울 지경이었다 - 잠을 자고 있었다. 나도 선잠을 자기 위해 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양쪽 귀를 틀어막고 있는 터라 혹시 몰라 도착시간쯤 알람을 해두었는데 그 알람에 눈을 떴다. 종착역인 용산, 사람들은 이미 내리기 위해 문 앞에 줄을 서 있었다. 나도 내리기 위해 일어나려는데 옆자리 구석에 무언가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핸드백의 금줄이었다. 보니 여자는 자기 앞에 내려놓았던 작은 캐리어만 들고나가버린 것이었다. 몹시도 당황한 나는 내리는 문쪽을 봤다. 문이 막 열리고 맨 앞에 서 있던 녹색원피스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기차에서 내려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는 핸드백을 얼른 집어 들고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이런 일을 예상하고 저 컬러를 선택한 것일까? 덕분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뒤 따라잡은 그녀를 바로 뒤에서 불렀다.

" 저기요! " 푹 자고 난 얼굴, 어쩌면 아직도 잠이 조금 덜 깬 듯 한 표정의 여자가 나를 뒤돌아봤다.

아무 말 없이 가방을 건네자 고맙다고 했던가? 음성은 딱히 기억이 안 나는데, 여자의 순간 고마움과 반가움으로 환해진 표정이 고맙다는 말을 한 열 번쯤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방향이 같았지만 뒤따라가기 애매해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분주한 플랫폼에 잠시 서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렇게 고맙다면....... 다음부터는 통화는 조용히 그리고 짧게..... 그러면 나도 고맙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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