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렇구나!

괜한 신경쓰임은 보태지 않기를

by 이녹

우리 집의 욕실은 바닥타일이 검은색이다.

1년 넘게 살다 보니, 물때가 끼어도 그다지 더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었다. 게으른 이들에게 검은색은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아파트단지가 오래되었으니 물론, 집도 오래되었고 타일만 리모델링을 한듯한 욕실도 나이가 많은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나뭇잎들의 탄생과정을 내려다볼 수 있는 탁 트인 베란다도 그렇고,

( 나무를 올려다보지 않고, 가까이서 내려다보니 봄날 연둣빛 새잎이 나오는 것을 천천히 관찰할 수도 있었다 )


욕조를 갖추고도 1인이 들어가서 있기 적당한 크기의 화장실도 나는 사랑한다. 그래도 단점이 하나 있다면 세면대. 배관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보름에 한 번씩 뚫어주는 제품을 써도 물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일은 드물다. 큰아이가 실수로 배관을 건드려서 빠져버린걸 혼자 끼워 넣은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냄새가 저 세상의 향기였다고 한다. 이제껏 맡아본 적 없는 최악의 냄새!

며칠 전이었다. 욕실에는 두 개의 플라스틱 대야가 있는데 손빨래를 가끔 한다는 것이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포개놓은 대야를 한쪽에 잘 놓아도 아이들이 머리를 감을 때나 변기를 쓸 때나 건드려서 인지 배관옆으로 옮겨가 있는 일이 자주 있었다. 나는 큰애가 경험한 저 세상의 냄새가 전혀 궁금하지 않았기에 아이들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씻으러 갔는데, 또 배관 바로 옆에 옮겨져 있는 것이었다. 몸도 꽤나 피곤한 날이었던지라 내 말투는 누가 들어도 잔소리 버전이었다.

그때 둘째 아이가 받아쳤다.

"엄마, 그냥 어디 다른 데다가 놓으면 안 돼?"

아.................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잔빨래는 세면대에서 했었고, 해봐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큰 손빨래를 하는데 베란다에다 두고 필요할 때만 가져다 쓰면 되는 것을..... 가까이에 놔두고 이제껏 쓸데없는 신경을 한 가지 더 보태고 살았던 것이다.

아이의 말대로 베란다에다가 가져다 두니, 곧바로 욕실은 더 넓어지고 깔끔해졌다.

그러자 문득 쓸데없는 것들을 또 보태고 있는 것들은 어디 또 없을까 싶었다. 많은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잔뜩 굳은 어깨가 무겁다고 이제 조금씩 털어내자고 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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