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수렁 속으로
나의 심장은 어딘가에 붙어서 여전히 몸뚱이가 자빠지지 않도록 열심히 뛰고 있었지만, 전작 마음의 생은 끝나 있었다.
앞으로도 남은 생은 200년 같아 보였고, 마치 손발이 끝나지 않는 시간이라는 족쇄에 묶인 죄수처럼 앞에서 끌고 가는 데로 멍한 눈빛으로 끌려가는 꼴이었다. 내 의지라고는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고 하는 기본 생리적 욕구해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유일한 갈증해결이라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보거나 동네 비디오가게에 터벅터벅 걸어가서 흥행성공한 작품은 제외하고 - 난 남들과 달랐다고 생각했고, 비정상적인 외계인이라 생각했다. - 이상한 제목의 독립영화들을 손에 꼭 쥐고는 돌아왔다. 남들이 해변으로 어디로 들떠 있던 여름휴가철엔 뭐라고 썼는지 기억은 없지만, 몇 자의 유서까지 적고는 수면제 40알로 생을 끝내려 한 적도 있었다. 약 개수가 모자랐는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요동만을 공포스럽게 느끼면서 다 토해내고 말았지만.
스스로 낙인찍은 사회부적응자, 밥벌이를 해야 하는 20대 백수와 짧은 사회생활을 - 남들의 시선과 사소한 비난에도 견뎌내지를 못했다 - 반복하다 보니 카드빚만 눈덩이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카드 두 개로 돌려 막기를 하다가 막다른 골골목에서 손을 내밀어 준 언니네 얹혀살면서 몇 년 후 겨우 갚아냈다.
그때쯤, 이제는 사회적으로는 결혼을 해야 되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결혼은 꼭 도달해야 될 목적지나 골인지점이라서 골을 넣지 않고 딴 곳을 배회하거나, 골 넣기를 거부하거나 그럴 용기조차 나에게는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선을 보거나 본 후에도 이렇다 할 소식이 없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셨고, 유일하게 남은 물건 하나를 팔지 못해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노점 상인처럼 속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나는 중대 숙제를 마치지 위해 주말엔 두 번, 격주로 한 번씩은 선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 남자를 만났다.
이제껏 본 중에 그래도 말이 통하는 기분이 들었고, 낯가림이 심한 나와 달리 꽃가게를 해서인지 어디 가나 낯선이 들에 게도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대화를 하는 것이 좋아 보였었다.
카드빚을 다 갚은 거였지 모아놓은 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에 비해 돈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거의 없었다. 당시 원룸에서 지내는 것을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듯 이런저런 변명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빠르게 진행된 결혼 후 큰 아이가 뱃속에 있는 상태에서 모든 것은 밝혀지고 말았다. 나는 20여 년 전, 도둑년이라는 것이 밝혀졌던 날 밤처럼 다시 고요한 아이 아니 잔뜩 기가 죽어 멍한 눈빛의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어리석던 기대였던 취집은 단시간에 끝나버리고, 새로운 지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