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사람은 불편한 것을 찾아 해결하기 위해 변화를 추구한다. 대부분 사람은 불편함을 찾기보다는 정해져 있는 것을 찾는다. 굳이 불편함을 찾아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문제를 단순화하고 쉬운 방법을 찾는다.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것을 선택한다. 누군가가 정리한 것을 따르려고 하지 내가 생각해서 정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유는 오랜 시간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은 강력하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예민해진다. 불편함을 느낀다.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생각한다. 변화를 일으켜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자신만의 고유한 욕망을 확인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문명은 생각의 결과다. 인간이 만든 것을 문명이라 한다. 인간은 변화를 이야기하는 존재다. 문명은 인간의 생각에 의한 결과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고, 생각을 더 하느냐 덜 하느냐의 차이가 인간을 결정한다. 높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높은 사람이 되고, 얕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얕은 사람이 된다. 인간적인 삶의 핵심이 생각이고, 생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인 최진석 교수의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문장론」에서 세네카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람들은 판단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믿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복잡한 문제의 해답을 스스로 찾기를 거부한다. 누군가가 정리해 주기를 바란다.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생각해서 정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복잡하기 때문이다. 편안한 것을 찾는다. 단순화시킨다.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둔감하다. 예민하지 못하다. 생각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 정리해 준 것을 쉽게 믿고 동조하고 따른다. 종속되는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책을 읽을 때도 책 속 작가의 말에 쉽게 동조하고, 동경한다. 책 속에서 나는 없다. 내 생각은 없다. 읽기에만 머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게으르다. 지적으로 게으르다. 읽기만 하는 것은 쓰기보다 편하다. 이 책 저 책 읽기만 하고, 수동적으로 책 쓴 사람의 지혜를 믿고 따른다.
인간은 읽기와 쓰기의 경계에 있다. 읽으면 써야 한다. 읽기에만 머문다면 경계가 무너진다. 한쪽으로만 치우친다. 편안한 쪽으로, 수고가 덜 들어가는 쪽으로 치우친다. 쓰기보다 읽기가 수고가 덜 들어간다. 말하기보다는 듣기가 수고가 덜 들어간다.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수고가 덜 들어간다. 인간은 수고가 덜 들어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긴장하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경계에 서야 한다.
나는 읽고, 듣고, 말하고, 쓰고, 정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소용없는 일이라고 부정한다. 사람은 생각해야 하고 생각한 것만큼 보게 된다. 배움은 지금보다 더 높고, 사고가 더 확장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삶의 수준이 10년 후에도 크게 변화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지 않고 흘려버린다면 후회할 것 같다.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 보고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거 없다고 생각하면서 미래도 크게 달라질 것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암울한 생각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 만약 나에게 생각함에 있어서 수고가 덜 들어가는 쪽과 수고가 더 들어가는 쪽을 선택하라면 나는 수고가 더 들어가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인간은 생각의 수준만큼만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이 나의 욕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