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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민 Feb 10. 2024

버럭이 가져온 성찰

설 명절에 나는 부모님 댁을 이틀 간다. 설날 그리고 설날 하루 전 일. 설 날에는 차례를 지내고, 설 전일에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자고 오면 좋지만 부모님 댁과 거리가 가까워 잠은 편안히 집에 되돌아 가 자고  설날 아침에 다시 부모님 댁을 간다. 짧은 여휴 기간 중에 이틀을 연속으로 방문한다는 것이 내게 큰 짐이 된다. 주중에 일로 지쳐 있다가 연휴가 오면 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설 전일에 음식을 많이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고작 전을 부치는 것이 다 인데도 내 마음은 불편하다. 


나는 설 명절 전날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참 아깝다. 그동안 바쁜 일상에 치여 삭막한 도심을 떠나 한가로운 곳으로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다. 나는 점심을 먹고 드라이브라도 하고 오자고 가족들에게 제안했다. 가족 모두는 동의했지만 다들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TV를 보면서 1시간이 그냥 흘러버렸다.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인 전을 부치지도 않았다. 아까운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고, 화가 난 나는 갑자기 '갈 거야 말 거야' 화를 냈다. 분위기는 전쟁모드로 전환되었다. 평온함은 사라지고 으르렁거리는 불편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나의 생각 없는 한 마디가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밖으로 바람 쐬러 안 나갈 거면 전을 부치자고 또다시 소리쳤다.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나와 아내는 화가 난 채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씩씩거리며 1시간 만에 전을 다 부쳤다. 전을 부치고 나니, 화가 났던 마음은 조금 수그러들고 다시 가까운 바닷가에 가는 것에 가족들 모두 동의하고 차에 올랐다. 차 안에서도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내가 버럭버럭하고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더니 집안 분위기가 차가워졌고, 기분 좋았던 감정들은 불편하고 화난 분위기로 바뀌어 서로가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이다.


다행히 목적지에서 케이블카를 탔다. 아름다운 햇살과 출렁이는 바닷물,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풍광에 서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우리의 인생은 짧다. 짧은 인생을 서로 원망하고 탓하고 싸우고 불필요한 감정을 소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알고 배려하고 살기에도 부족한데, 내 감정이 앞서 분위기를 망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우린 상대로부터 감정적인 공격을 받으면 기분이 나빠지면서 상대 탓을 한다. 나의 불편한 감정이 무엇 때문인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왜 그런 것인지를 조금 멀리서 생각해 본다면 나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화난 감정을 '너 때문이야'라고 탓하고, 남에게 원망을 돌리고,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감정이 그렇구나 이해한다면 짧은 인생을 좀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따뜻하게 보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본다.


 "죽음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보다 사는 동안 어떻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보람되게 사는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정호승 산문집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에 나오는 말이다. 만일 우리가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단 한순간도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소중히 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헤아려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짧은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한 지혜라는 걸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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