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이제 모든 산업에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 앞에서, 창의성과 지적 노동마저 알고리즘에 대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질문의 초점은 다시 ‘인간’으로 향한다. 우리는 AI를 어떻게 정의하고,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이노레드의 김태원 대표, 업스테이지의 손해인 부사장, 그리고 『노자의 마음공부』의 저자 장석주 시인. 서로 다른 분야에 서 있는 세 사람이지만,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AI 시대의 진짜 생존 전략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다.
김태원 대표는 AI 시대를 “인간에게 새로운 시간을 선물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이 반복적이고 기능적인 업무를 대신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자원’이 된다. 핵심은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AI가 시간을 벌어줬다고 해서 인간이 저절로 더 인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돌려받은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낸다. 그렇기에 그 시간을 ‘사유’와 ‘창조’에 재투자해야 한다.
과거에는 정답을 얼마나 빨리 찾느냐가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답을 도출하는 일은 이미 AI가 압도적으로 잘하는 영역이다. 이제 경쟁력은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AI가 학습한 방대한 데이터 너머의, 아직 포착되지 않은 맥락을 읽고 낯선 질문을 던지는 일 — 그것은 여전히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능력이다.
‘질문하는 사람’은 AI의 정답에 의존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질문하는 사람은 AI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재해석하며,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는 능동적 주체다. 기술은 사유의 공백을 메우는 도구일 뿐, 사유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관점이다.
업스테이 손해인 부사장은 ‘뼛속까지 문과생’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AI 기업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동력은 코딩 기술이 아니었다. 핵심은 문제를 정의하는 역량이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붙잡은 집요함이, 그녀가 AI 회사를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기술은 ‘밀키트’처럼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경쟁력의 핵심은 ‘어떻게 만드느냐(How)’가 아니라 ‘왜 만드느냐(Why)’에 있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도메인 지식은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게 하는 힘이다. AI 시대의 진정한 자산은 ‘기술 자격증’이 아니라, 전공과 기술을 끊임없이 연결하고 확장하는 ‘융합적 감각’이다.
장석주 시인은 속도의 시대에 ‘깊이’와 ‘성찰’의 가치를 역설한다. 그는 배움을 통해 지식을 채우되(위학), 비움을 통해 도를 닦는(위도) 지혜를 말한다. 아무리 방대한 정보(Data)를 쌓아도, 진정한 통찰은 그 사이의 해석의 여백에서 비롯된다.
효율성만을 맹목적으로 좇다 보면, 인간은 거대한 기술 시스템의 부속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AI가 제공하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사유의 상실’이라는 치명적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도록, 분명한 윤리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
세 사람의 메시지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김태원의 ‘자신만의 독창적 세계관 확장’, 손해인의 ‘문제 해결하는 기획력과 인문학적 통찰력’, 그리고 장석주의 ‘성찰의 깊이’.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주체성’으로 모아진다.
우리는 AI에게 삶을 위탁하는 대신, 스스로 성찰하고 창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기술의 문법과 인문학적 깊이, 효율과 본질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감각은 이제 필수 역량이다. 질문이 살아 있는 한, 인간은 알고리즘의 종속 변수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라는 함수를 새롭게 설계하는 유일한 창조자다.
미래의 경쟁력은 데이터나 알고리즘에 있지 않다. AI가 선물한 시간을 통해 깊이 사유하고, 현장의 ‘날것의 경험’을 쌓아 자신만의 고유한 서사를 빚어내는 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