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저서 「프레임」에서는 지혜에 대해 정의를 하고 있다. “지혜란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를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으로 어려운 일을 수월하게 해내는 사람을 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이 정도쯤이야 거뜬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막상 해보면 잘 안 된다.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안우경 석좌교수의 저서 「씽킹 101」에서는 이러한 착각을 유창성의 효과, 유창성의 착각(illusion of fluency)이라고 말한다. 안다는 느낌의 오류다.
강의를 듣고 나면 마치 강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 강의 내용을 설명하려고 말을 꺼내면 강의 내용의 10%도 말하지 못하는 나를 만나게 된다. 회의를 준비하는 계획을 세우면서 마치 상황을 모두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일시, 장소, 참석자, 시간 계획, 시나리오, 말씀자료, 좌석 배치도 등을 미리 준비하면서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만 회의를 하는 날이 다가왔을 때 회의를 개최할 수 있는 위원의 구성이 되지 않아 곤란에 빠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들이 눈앞에 나타나곤 한다.
2년 동안 대학원을 다녔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의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노션(NOTION, 일종의 디지털 협업 도구)에 적어 내려했다. 수업이 끝나면 만족감에 집으로 와서 수업 시간에 기록했던 노트를 다시 보려 하지 않고 잠이 든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말이다. 결국 시험을 볼 때가 되면 기록했던 노트의 내용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기록했다는 만족감이 독이 된 것이다. 백지상태에서 내가 아는 것을 적어 보면 나의 지식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금방 알게 된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잘하려는 욕심에 발표 자료를 열심히 만들었다. 발표 날이 다가오자 불안감에 휩싸였다. 발표는 생각을 잘 정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로 잘 전달하는 것이다. 청중 앞에 서기 전에 말로 연습을 해봐야 한다. 그래야 내가 잘할 수 있는지 아니면 어디가 부족한지 알게 된다. 직접 말로 연습하지 않고. 발표를 하면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 나오질 않는다. 분명 머리로는 생각했는데 말이다. 바로 잘 알고 있고, 할 수 있다는 착각이 발표를 망치게 한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생각 정리'의 시작점이다. 20세기 현대 예술의 거장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다”라는 유명한 말씀을 남겼다.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이자 뇌공학자인 정재승 교수의 저서 「열두 발자국」에서 인생에는 ‘결정의 순간(GO/NO Go moment)’이 있다고 말한다.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가야 할까 가지 말아야 할까’와 같은 의사결정을 수없이 한다는 것이다. '최인아 책방'의 최인아 대표는 세바시 강의에서 ‘결정적 순간’이 인생의 마디마디마다 있고, 그 순간에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접근하며,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인생의 길이 갈린다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접근하며,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을 잘 정리해야 한다. 선명하지 않은 생각을 선명하게 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정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는 이 일이 왜 해야 하는 것이며,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내 머릿속은 선명한가?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한다. 수많은 생각의 가지들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기획서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수집한다. 막상 기획서를 작성하려 시작하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너무 많은 정보가 생각 정리를 방해한 것이다. 정보가 많다고 해서 복잡한 생각이 선명하게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심테크 대표인 정영교 대표의 저서 「프로젝트 능력」에서는 생각 정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좌뇌와 우뇌를 잘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좌뇌는 논리적인 사고를 한다. 우뇌는 이미지, 음악, 미술 등 예술적인 감각을 담당한다. 논리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좌뇌는 복잡한 생각을 수렴하는 영역을 담당한다. 창조적 사고를 담당하는 우뇌는 생각을 발산하고 전체를 조감하는 영역을 담당한다.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일을 시작할 때는 자료를 수집하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생각을 발산하여야 한다. 일을 마무리할 때는 수많은 자료 중에 필요한 자료를 뽑아내고, 생각의 덩어리를 구성하여 목표를 향해 모아져야 한다. 좌뇌와 우뇌를 활용하는 종합적 사고력이 창조적 대안을 만들어 낸다. 마치 라면을 끓일 때 물을 끓이고, 라면과 수프, 달걀, 파 등을 넣고 적정한 시간 동안 최고의 화력으로 끓인 다음, 마지막에 가장 맛있는 시간에 맞춰 불을 끄고 맛있게 먹는다. 하나의 점에서 시작하여 팽창의 과정을 거쳐 목표로 하는 하나의 끝점을 향해 서서히 수렴하는 럭비공 모양의 과정처럼 말이다.
결국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아는 것과, 결정적 순간에 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 등은 생각을 잘 정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삶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생각 정리다. 수많은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으로 복잡한 머릿속의 자잘한 생각들을 과감히 쳐내야 한다. 질문하며 한 발 더 들어가 생각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질문에 질문을 더하면 문제해결의 본질에 접근하게 된다. 끝까지 파고드는 몰입이 삶에서 통찰을 불러오고, 결국 창의적인 대안을 끌어낼 것이다.
필자는 생각정리를 하는 유용한 도구로 씽크와이즈(일종의 마인드맵과 워드프로세서를 합한 도구, 마인드프로세서라 한다.)를 사용한다. 문제해결을 해야 하는 주제를 적어보고 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브레인 스토밍하듯이 적어낸다. 유사한 것은 묶고 그렇지 않은 것을 분류하는 구조화 과정을 거친다. 하나의 이미지로 전체와 세부적인 부분을 동시에 왔다 갔다 보면서 종합적 사고를 해보는 것이다. 바로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종합적인 사고 과정에서 번뜩이는 창의적 대안을 찾아낼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 해야 할 일인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인지를 알 때 비로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안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에서, 일상에서 문제해결의 '결정적인 순간'에 씽크와이즈를 활용해 생각을 정리하면 좋겠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