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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민 Mar 04. 2023

최인아 책방으로 가는 길에서

  토요일은 몸이 나른하다. 오전 결혼식장을 힘내서 다녀왔다. 다녀와서 그대로 누워 버렸다. 최인아 책방에서 <코로나 시대의 편지> 박종호 저자와 책 모임이 있다. 누워 있다가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자 가야 할까 그냥 잘까 싸우고 있었다. 선릉까지 가려면 버스 타고 내려서 전철을 갈아타고, 걸어야 하는데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간다고 대답을 냉큼 해버린 것이 잘못이었다. 다행히 신청자가 많아 나 하나 빠져도 되겠다고 생각했다가도 어느새 일어나 세수하러 화장실로 들어간다. 


  낯선 저자와의 만남. 첫 번째는 2019년 12월 초였다. 데이터행정팀장을 하다가 2019년 7월에 도서관정책팀장으로 자리를 옮겼었다. 자리를 옮겨도 데이터분석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차현나 데이터사이언티스트가 <데이터 읽기의 기술>이란 책을 냈을 때 강남 봉림사 근처 어딘가로 갔던 기억이 있다. 평일에 조퇴하고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다녀왔었다. 참여자들은 대부분 마케팅 실무자였다. 저 멀리 경기도 화성시에서 데이터 하고 관련 없는 공무원이 왔으니 주관하는 분이 의아해했었다. 끝나고 나서 집에 올 때 뿌듯한 기분이었다. 책을 쓴 저자의 생각을 직접 말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쓰게 된 배경과 뒷이야기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어찌 되었든 버스를 타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최인아 책방을 향하고 있다. 책은 다 읽지 못했다. 책방에 가게 되면 작가의 생각을 깊게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책방의 분위기는 느끼고 싶었다. 박종호 작가님의 책은 <코로나 시대의 편지>이다. 시집은 아니고 시가 많이 등장한다. 에세이집으로 보인다. 코로나 시기에 풍월당 회원들에게 쓴 편지글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책에서 <공부하는 노년>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돈을 벌기 위한 공부 말고, 출세하기 위한 공부 말고, 공부 자체가 꿈인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인은 늙은 아내가 병원에서 진료받는 동안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노년에 책을 읽는 노인은 성취하는 일 없어 보여도 책을 읽는 태도는 좋은 영향력으로 사회는 나아진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교양이 사회를 발전하게 만든다. 공부는 익숙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개척하는 것이다. 안주하는 것이 아닌 일어나 행동하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익숙한 것만 보려 하지 말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얽매이지 않는다. 편향되지 않는다.



  어느새 최인아 방에 도착했다. 4층에 있다. 걸어서 올라가니 땀이 났다.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와, 토요일 오후 5시에 책방에 저자를 만나러 오다니 이 분들을 어떤 분들일까? 궁금했다. 음료값 1만 원을 주고 자몽차를 받았다. 다행히 맨 앞자리에 한자리긴 비어 있었다. 용기 내어 맨 앞자리에 앉았다. 다행이다. 뒤에 앉으면 저자에게 집중하기 힘들다. 덕분에 숨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이 순간에 집중했다.


  10년 동안 이천 권을 책을 보았더니 세상이 보인다는 작가의 말에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주일에 다섯 권을 읽어내야 한다. 일 년에 이백 권을 읽고, 10년 동안 읽어야 이천 권을 읽는 것이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지적인 호기심과 탐구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도전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어렵더라도 시도해 보리라.


  작가는 원래 의사였다. 수많은 환자들을 봤었고, 수입도 많았었다. 주변의 의사 친구들을 보면 '인식의 성장'은 없어 보였고, 계단의 사다리로 끊임없이 올라가려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고 의사를 내려놓고 풍월당(아카데미, 출판, 음악이 있는 공간. 2003년 설립)을 한다.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욕망인 '계급의 사다리'로 올라가려고만 한다. 더 높은 지위, 더 넓은 평수의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물질을 추구한다. 미래의 시점에서 본다면 다 부질없는 일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식의 변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최인아 책방에 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박종호 작가가 세상을 보는 잣대를 보고 과연 나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를 깨우치러 온 것이다. 작가는 똑같은 잣대로 똑같은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올라서는 사람은 획일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회 질서를 비판하고 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잣대를 내가 나의 잣대로 바꾸면 된다고 말한다. 설렁탕 한 그릇에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그것이면 좋은 것이다.


  인식의 성장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이다.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면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는 책이다. 책을 통해 본질이 무엇인지에 가까워질 수 있다. 박종호 작가가 말하는 지식이 뭔지 파악하는 것이 아니고 맥락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배워 나를 바꾸는 것이 오늘 이 자리에 온 진짜 이유인 것처럼 말이다. 환경을 오염시키지 말자고 하고 가장 큰 차를 갖고 다니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 말이다. 사회 밑바닥에 성숙한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는 성숙해진다. 성숙한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나은 사회로 갈 수 있다. 조금 더 나은 사회로 간다는 것은 양극화가 좁혀지고, 불합리한 일들이 줄어드는 사회가 아닐까.  한쪽 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 다양한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배려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결국, 최인아 책방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또 다른 나와 마주쳤다. 익숙한 것에 머물지 말고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나서는 색다른 자극이 좋다. 책으로만 배우려 하는 지식은 반쪽짜리 지식이다. 실제 경험을 통해 내 안에 축적된 지식들과의 마주침을 통해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깨우침이 진짜 공부가 아닐까?  내가 가진 자산, 지위, 직업, 이런 것들이 더 부유하고 더 많이, 남들보다 더 낫게 가지려 하는 것에서 벗어나, 인식의 성장을 추구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며, 세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함을 봤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더 다양한 관점에서 나를 보고 세상을 바라 보자.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잘 모르는 것, 익숙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고 개척해 보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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