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성령

by 선지 마르소

추락하는 성령을 본 적이 있어

눈물처럼 가파르게 떨어지는 성령


그것은 떨어지면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어

(나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성령은

하필이면

토끼의 귀가 가장 쫑긋해지는 시간에 떨어졌지 뭐야


토끼는 분명 무슨 소리를 들었을 거야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들은 게 없다고 말했어

(토끼는 아직도 내게 그렇게 말해)


개똥지빠귀는 보았을까

아니다

모든 만물에 대한 의심

이제는 그만 거둬야지


나는 가끔

저기 그루터기에 쪼그려 있는

왜소한 철쭉들처럼 생각해

(마냥 멍청하기만 한 생각은 아니니까)


'아무것도 아니고 싶다

아니, 돌이고 싶다

그것도 아니라면 바람이려나'


아무것도 아니고 싶다

동틀 녘에 쏟아지는

무수한 상흔의 흔적보다

샹들리에 속

영광의 빛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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