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금이 간 건물

by 선지 마르소

낡고 금이 간 건물은

여느 인간들처럼

시름시름 앓을지언정

무너져 내리는 법이 결코 없어

그곳에서 나는

동쪽의 산들에 눈을 고정해


산봉우리 너머로 언제 해가 떠오를지 기다리면서


저거 봐

해가 산봉우리 위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마치 신이 빚은 것처럼

장엄하게 빛나는

동쪽의 산들에 인사하고 있어


겨울이야

어젯밤 내리던 비는

대지에 스며들어 자취를 감추었지

까마귀 떼에서 홀로 떨어져 나온

새끼 까마귀는

골짜기 위의 너도밤나무 잔가지 위에 살포시 앉아

이 작은 섬마을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지

아직까지 단잠에 빠진

처가 지붕들을 바라보고 있어


깍 깍


4년 전 여름

온통 갈대뿐인 들판

그 옆에 난 비포장길도 그대로지

변한 건 계절뿐인가

비 온 뒤의 하늘이

더 파랗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아

청명했던 하늘의 매무새

마지막으로 어루만져

적막의 산물인 초인종 소리

고요함의 친구가 되어 주었지


내가 사는 곳이 그런 곳이지

낡고 금이 간 건물은

여느 인간들처럼

시름시름 앓을지언정

무너져 내리는 법이 결코 없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양이 채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