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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Jun 24. 2024

비로소 보이는 것

'나'로 살기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가 새벽시간을 활용하여 우유배달을 하셨다. 주변 아파트 단지를 1시간 남짓하는 거라며 일찍 일어나고 계단도 오르면 운동도 되고 좋다고 하셨다. 지금처럼 고층 아파트가 있는 단지가 아니였기에 직접 계단을 정말 그런 줄만 알았다. 엄마의 우유배달 장점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 새벽마다 혼자 일어나 나가는 엄마가 안쓰러운 마음이었는지 엄마를 따라 4시 30분에 따라 나섰다. 그렇게 나의 미라클 모닝은 의도하지 않게 시작되었다. 12월의 4시 30분은 깜깜해도 너무 깜깜한 날이었다. 우유리어카를 아파트 동앞에 주차를 해 놓고 우유 바구니에 집집마다 배달될 우유를 담아 대문 문고리에 걸려있는 우유보냉백에 담아주면 미션 끝이었다.  가끔 우유 배달을 하다보면 잠옷을 입고 따뜻한 음악이 흐르는 집에서 내가 배달 해 주는 우유를 친구의 손에 건네 주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면서 곧이어 학교에 우리 엄마가 우유배달하는 사람이라는게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덩달아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가끔은 친구들과 좀 멀어지면서 우정이라는 가면속에 있던 배신과 친구를 식별하는 눈이 열렸던 거 같다.  6학년이라는 나이의 특수성과 어려운 가정형편이라는 피치 못할 상황을 생각 해 보면 숨고 싶은 심정이 들었을 것 같은데 난 그게 오히려 좋았다. 이유는 그게 현재의 '우리엄마'였고 '나'였으니까. 그리고 이 모습 이대로 있지 않을 '우리엄마'이고 '나'이니까.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을 위장한 확신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인생의 오르막을 오르는 중이다. 힘겹다. 버겁다. 비참하다. 때로는 마음에 이런 감정들이 쏟아져 내리는 날이면 눈물도 난다. 이 감정을 끝을 들어다 보면 나는 내 삶을 참 사랑하고 아끼는데 그 사랑만으로는 오르막을 오르기가 힘겹다는 생각이고, 힘겹지만 포기하지도 못하는 마음과 한켠엔 오르막의 끝을 알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어린 시절 확신에 찼던 6학년 소녀로 돌아가 잠시 그 소녀와 여행을 잠시 떠난다. 그 소녀에게 노하우와 꿀팁을 묻고 배우려고. 

그 소녀에게는 혼자가 아니라는 눈이 있었다. 표현을 잘 하진 않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한집에 한솥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자신을 그대로 받아주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의 놀림을 오히려 아침마다 운동을 해서 체육시간에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칭찬과 동시에 놀리는 친구들을 혼내주는 선생님이 계셨다. 매주 달려가 매달릴 수 있는 전우가 있는 교회가 있었다. 

그 소녀에게는 매일을 아름답게 보는 눈이 있었다. 어떠한 꼼수가 틈타지 않을 만큼 지금의 자신의 삶이 소중했다. 소녀의 엄마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소중한 마음, 소녀의 엄마가 그 돈으로 반찬을 사서 오늘 저녁은 어쩌면 소세지 반찬을 먹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 학교에서 신청하지 못한 우유가 혹시 남는다면 소녀의 엄마가 하나를 건넬 수도 있겠다는 설레임. 매일의 작은 순간조차도 아름답게 해석하여 보는 눈을 가진 소녀가 부럽다.

그 소녀에게는 주는 것이 오히려 채워짐을 보는 눈이 있었다. 그 소녀는 세상이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삶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동시대의 흐름속에 살아갈 타인도 중요하다는 훈훈한 마음의 소유자 였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는 내 것을 소진하는 것 같지만 줄 수록 채워진다는 삶의 진리를 삶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 소녀와의 짧지만 기나긴 여행을 하고 나니 궁금했던 오르막의 끝이 더이상 의미가 되고 있지 않다.

오르막은 그냥 오르는 것이다. 이런날은 허벅지 근육으로 저런날은 열심히 흔드는 팔 힘으로 또 어떤날은 코어힘으로 바람을 타고 비도 맞고 눈도 즐기며 뜨거운 태양을 피하여 함께 오르는 이들과 즐겁게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를 위하며 때로는 나를 향한 기대감으로 그렇게 오르고 오르다 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 소녀처럼...

그렇게 비로소 보일 때까지 '나'를 향한 시선을 놓지 않으며 설레임과 온기를 안고 인생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워 말라...내가 너를 굳세게 할리라(이사야 41:10)'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맞서 나가라(역대하 20: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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