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찌낚시의 미동, 붉은 막대의 태동

by 도연

수술실의 차가운 조명이 꺼지고 머릿속을 짓누르던 안개가 서서히 걷혔을 때, 내 머리에는 지워지지 않는 깊은 흉터와 함께 삭발한 흔적이 남았다. 거울 속에 비친 낯선 내 모습은 열일곱 소년이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가혹한 낙인이었다. 누군가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결국 학교를 잠시 멈추기로 했고, 나는 자진해서 고독의 심연으로 걸어 들어갔다.

세상의 시선을 피해 내가 찾아간 곳은 개운못 저수지였다. 낡은 낚시 가방을 어깨에 메고 저수지 한구석에 자리를 잡으면, 그곳만큼은 타인의 날카로운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일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할 고등학교 2학년 소년이, 삭발한 머리를 모자로 깊게 눌러쓴 채 저수지 가에 앉아 찌낚시를 하는 풍경은 그 자체로 생경하고 기이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주변의 눈길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끄러미 일렁이는 수면만을 바라보았다.

수술 전에는 단 십 분도 진득하게 앉아 있기 힘들 만큼 산만했던 내가, 전두엽의 종양을 걷어낸 후로는 몇 시간이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물 위에 떠 있는 찌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고요한 수면 위로 솟아오른 작은 찌는 모든 소음이 차단된 정적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는 대상이었다. 바람의 숨결에 흔들리고, 잔잔한 물결에 일렁이다가도, 물밑의 보이지 않는 생명체가 미세하게 건드리는 그 찰나의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찌가 아주 조금 위로 솟구치거나 다시 밑으로 가라앉는 그 유연한 움직임 속에서 나는 기묘한 전율을 느꼈다. 낚시 찌가 오르고 내리는 그 파동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의 호흡처럼 다가왔다. 문득 그것이 세상의 모든 가치가 움직이는 근원적인 원리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벼락처럼 머리를 스쳤다. 오르고 내리는 것, 지루한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찰나의 기회, 그리고 그 기회를 확실하게 낚아채기 위해 필요한 지독한 인내심.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주식'이라는 단어가 붉은 막대처럼 강렬하게 솟아올랐다. 우리 가족을 짓누르는 가난의 사슬을 끊어낼 유일한 열쇠가 저 찌의 미세한 떨림 속에 숨어있을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결심을 굳혔다. 이 지독한 결핍에서 우리 가족을 구출해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내게는 단돈 만 원의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할머니를 찾아가 내 가슴속에 일렁이는 계획을 말씀드렸다. 내 절박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을 읽으신 할머니께서는 평생을 아끼고 아껴 모으신 쌈짓돈을 꺼내어 내 투박한 손을 꼭 잡으셨다.

우리는 함께 대신증권 영업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삭발한 머리를 가리기 위해 모자를 챙까지 바짝 눌러쓰고, 할머니의 느린 보폭에 맞추어 걷는 그 길은 유난히도 멀고 험하게 느껴졌다. 지점 입구에 들어섰을 때 피부로 느껴지던 그 팽팽한 긴장감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숫자들이 어지럽게 명멸하는 대형 전광판 아래에서 나는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생애 첫 주식 계좌를 개설했다.

창구 직원이 무심하게 건네준 통장은 우리 가족의 생존이 걸린 마지막 승부수였다. 통장을 손에 쥐었을 때, 전두엽 근처의 수술 자국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예전처럼 이성을 잃고 제자리에서 무작정 점프하던 오류가 아니었다. 반드시 이 소중한 자본으로 가난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처절한 투지였다.

그날 이후 나의 일상은 개운못 저수지에서의 긴 기다림처럼 고요하지만 치열하게 흘러갔다. 낮에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무거운 짐을 나르고 편의점 선반을 묵묵히 채우며 번 돈을 조금씩 계좌에 쌓아 올렸다. 밤이 되면 수술 후 얻은 그 놀라운 집중력을 오로지 차트와 재무제표를 분석하는 데 쏟아부었다.

하지만 시장은 내가 저수지에서 보았던 풍경보다 훨씬 더 냉혹하고 잔인한 곳이었다. 낚시 찌를 바라보며 느꼈던 그 평온한 파동과는 달리, 실전 시장은 거대한 포식자들이 먹잇감을 노리는 거친 정글이었다. 할머니의 소중한 돈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밤마다 천장을 바라보며 가슴을 쥐어짜는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손실의 고통은 나를 다시 예전의 그 무기력하고 고장 났던 소년으로 되돌려놓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내 머릿속의 종양과 사투를 벌여 이겨냈던 것처럼, 이 가난이라는 괴물과도 끝까지 싸워 이겨야만 했다. 그 처절한 패배의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나는 조금씩 본질을 깨닫기 시작했다. 투자는 뇌가 시키는 달콤한 본능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저수지의 찌를 바라보듯 차분하게 그 본능을 거스르고 스스로를 깎아내는 과정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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