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끊어진 인터넷과 40%의 역설

by 도연

수술 후 얻은 집중력은 나를 지독한 공부의 세계로 밀어 넣었다. 주식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가난의 벽을 넘기 위해 나는 닥치는 대로 경제 서적을 읽고 차트를 분석했다. 아르바이트로 몸은 부서질 듯 고단했지만, 퇴근 후 모니터 앞에 앉아 붉고 푸른 막대들을 응시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식의 양이 늘어난다고 해서 계좌의 숫자가 곧바로 불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내 계좌는 언제나 푸른 멍이 든 것처럼 마이너스에 머물러 있었다. 공부하면 할수록 수익이 나야 한다는 논리는 시장에서 통하지 않았다. 가난의 사슬은 생각보다 견고했고, 투자를 유지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나날은 갈수록 팍팍해졌다.

그러던 중 나는 삼성중공업이라는 기업에 주목했다. 나름의 분석 끝에 확신을 가지고 매수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주가는 지지부진하게 흘러내렸고, 계좌에는 다시 손실이 쌓여갔다. 그즈음 집안 형편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이너스 수익률보다 더 무서운 것은 당장 눈앞의 현실이었다. 결국 통장의 잔액이 완전히 고갈되었고, 밀린 인터넷 요금을 내지 못해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회선이 끊겨버렸다.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집 안의 컴퓨터가 멈추자 나는 시장의 흐름을 확인할 방법조차 잃어버렸다. 주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을 텐데,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나는 깊은 자포자기에 빠졌다. "그래, 될 대로 돼라."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어도 고통스럽기만 하던 나날이었다. 나는 주식을 쳐다보지 않기로 마음먹고, 오로지 다음 달 월급이 들어와 인터넷 요금을 낼 수 있을 때까지 몸을 쓰는 노동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두 달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마침내 월급을 받아 밀린 인터넷 요금을 납부했고,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매수했던 종목을 확인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시세를 확인하지 못한 그 두 달 사이, 삼성중공업의 주가는 바닥을 치고 올라와 무려 40%가 넘는 상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만약 인터넷이 끊기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매일같이 요동치는 차트를 보며 불안에 떨었을 것이고, 지독한 손실을 견디지 못해 본전이 오기도 전에 혹은 작은 반등에 지쳐 손절매를 했을 가능성이 컸다. 나의 의지가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강제된 '단절'이 역설적이게도 내게 가장 큰 수익을 안겨준 셈이었다.

나는 개운못 저수지에서 찌를 바라보던 시절을 떠올렸다. 낚시의 핵심은 좋은 미끼를 던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물고기가 미끼를 완전히 물고 찌가 확실하게 솟구칠 때까지, 그 지루하고 고독한 과정을 견뎌내는 것이 진짜 실력이었다. 좋은 기업을 발굴하는 것이 공부의 영역이라면, 그 기업이 가치를 증명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오로지 인내의 영역이었다.

시장은 끊임없이 투자자를 흔들어 깨운다. 불안을 조장하고 탐욕을 부추겨 이성을 마비시킨다. 전두엽이 고장 났던 소년이 겪었던 그 통제 불능의 질주처럼, 투자자들은 매 순간 시세의 유혹에 휘둘려 성급하게 낚싯대를 채 올린다. 하지만 인터넷 회선이 끊겨 강제로 고립되었던 그 시절의 나는 깨달았다. 때로는 시장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깨달음은 훗날 내가 정립한 투자의 정답에 아주 중요한 뿌리가 되었다. 미끼를 던졌다면 그다음은 찌가 움직일 때까지 오로지 기다리는 일뿐이다. 끊어진 인터넷 회선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수익률의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필요한 고독한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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