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의 유대인제국

by 성숙

중국은 1842년 제1차 아편전쟁부터 1949년 중국공산당 집권하기까지를 치욕의 100년이라 한다. 그 기간에 영국과 일본의 외세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아편은 아스피린이 존재하기 전에 치료제로 쓰였다. 영국의 유대인 서순가와 커 두 리가의 활발한 아편무역과 자본주의가 상하이에서 시작되었다.

2차 대전 때 나치를 피해서 핍박받던 많은 유럽유대인들이 상하이로 들어오고 그 많은 유대인들을 서순가와 커 두 리가가 보호하고 큰 자본력으로 학교와 호텔을 지었고 금융재벌이 되었다. 그 당시에 HSBC를 설립했다.

서순가는 바그다드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집안으로 중국과 인도, 유럽에 영향력이 컸었다. 상하이에 커 두리 가는 MAJESTIC호텔, 서순가는 더 큰 CATHAY호텔을 짓고 더 화려하게 떠오르는 상하이가 됐다. 후에 막강한 자본으로 서순가는 경쟁자였던 커 두 리가의 호텔을 사들여서 폐쇄시켰다. 와이탄과 황푸강 주변으로 금융업을 발달시켰다. 1920년대 후반 상하이는 은행과 공장을 중심으로 세계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스탈린은 미국을 뛰어넘겠다고 했고 마오쩌둥은 영국을 뛰어넘겠다고 장담한 게 이해가 간다.

대공황시대에도 상하이에서 유대인 서순가는 빅토리아피크까지 올라가는 전차선로를 만들었고 금융조작을 즐기고 환율변동으로 계속 돈을 벌었다. 장제쓰와 관리들의 큰 협조가 있었다.

유대인은 일본의 요청으로 러시아를 침략하기 위한 자본을 빌려줬는데 그 이유는 러시아에 유대인강간살해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거대한 자본으로 오래전부터 세계를 조종했다.

전쟁 중에도 중국, 인도, 영국과 교역하며 호황을 이뤘고 은행 네트워크확대하여 다양한 통화에 접근해서 각국의 정치적 불안으로 통화가 불안정하면 자신의 돈을 파운드화 하여 이익을 증대시켰다. 유대인

그들은 역사적으로 농사지을 땅이 없고 대안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였다. 힘든 전쟁 중에도 상하이내의 조계에 학교를 세우고 히브리어로 유대인교육과 전통과 역사를 가리키고 논리성을 중요시했다. 조계란 외국인이 치외법권을 갖고 거주한 조차지로 열강들이 중국에 설치했다. 유대인교육 철학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온다. 전 세계인구의 0.2%인 유대인이 노벨상을 178번을 탔다니 경이롭고 이유가 있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은 우연이 아니며 영웅의 신념은 가볍게 얻어지지 않는다"

유럽에서 죽음을 피해 탈출한 유대인들이 상하이로 가서 자본활동에 적극적이었다니 의외였다. 중국과 일본과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계를 맺었는데 우리나라와는 큰 접점이 없어 보인다. 유대인 그룹사가 김대중정권 시대에 한라그룹을 헐값에 매수했다는데 경제는 정치와 맞물려간다.

이런 부를 거둔 유대인들은 교육이 큰 몫을 담당했다. 우리도 어느 순간부터 느슨해진 교육제도에 고삐를 바짝 당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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