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치과대학 진학을 앞두고 잠시 한국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였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치대 입학 준비물로 제출해야 할 파노라마 사진이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동네 치과를 찾아가 간단히 찍었던 그 사진이, 13년 후 나의 현재와 다시 연결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치과대학에 진학했고, 졸업했고,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했고, 면허를 다시 따기 위해 1년 동안 공부하며 다섯 개의 시험을 치렀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불안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일을 쉬며 여유를 즐기던 어느 날, 통장 잔고가 0에 가까워지는 걸 보면서 깨달았다. 노는 것도 결국 돈이 드는 일이구나. 현실적인 압박이 밀려왔고, 서둘러 구직 사이트를 찾아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가게 된 곳이 바로 지금의 치과다.
입사 후 어느 날, 환자 차트를 정리하다가 문득 내 차트를 띄워봤다. 그리고 익숙한 파노라마 사진을 발견했다. 오래된 데이터 속에 남아 있던, 내가 13년 전에 찍었던 바로 그 사진이었다.
삶은 참 신기했다. 우연처럼 보였던 일들이 결국 필연이 되어 나를 이 자리로 데려왔다. 돌아보니 지금까지의 과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감사함이 차올랐다.
그래서 오늘은 감사의 목록을 써보려 한다.
1.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감사
힘들었던 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불안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시간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날들 덕분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 과거의 내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말해줄 수 있다. “너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어.”
2. 배울 수 있었던 기회들
이 길을 걸어오면서 배울 기회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제는 안다. 처음에는 무조건 외워야 했던 것들이, 이제는 내 몸에 익숙하게 배어 있다. 모든 것이 서툴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나도 누군가를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3. 일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여전히 걷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 이 길이 내게 완벽하게 맞는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 덕분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4. 가족과 친구들
내가 흔들릴 때마다 묵묵히 곁을 지켜준 사람들. 때론 아무 말 없이, 때론 필요한 말을 해주며 내게 힘이 되어 준 사람들. 특히 한국에 돌아와 다시 시험을 준비하던 1년 동안, 가족이 없었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 시험에 불합격할 때마다 함께 좌절해 주고, 다시 도전할 때 응원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다.
5. 우연처럼 다가온 인연들
13년 전 파노라마를 찍던 순간, 지금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신기했을까? 어쩌면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국, 그 작은 우연들이 모여 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뜻하지 않은 선택들이 결국 나를 이 자리로 데려왔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엉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6.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나 자신
많은 것이 변했지만, 나는 여전히 노력하는 사람이고, 성장하고 싶은 사람이다. 13년 전, 치과대학 입학을 준비하며 파노라마를 찍었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때의 나는 그저 앞에 놓인 현실을 살아내느라 바빴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그 사실이 참 고맙다.
지나온 모든 것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우연처럼 보였던 순간들, 크고 작은 선택들, 때로는 나를 흔들어놓았던 일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한 조각도 빠짐없이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바쁜 하루에 치여 가끔은 잊고 살지만, 이렇게 한 번쯤 멈춰 서서 감사할 것들을 떠올려 보면 삶이 조금은 더 선명해진다. 여전히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