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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Jun 28. 2023

현타와 씨름하는 시간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아이유의 노래가사처럼 그렇게 기를 쓰고 애를 쓴 결과가 이거밖에 안 되는 건가 하는 허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건 중년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뜻일까.


어쩐지 나만 뒤처져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다. 나만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던 것처럼. 기어코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는 있지만, 그동안 다른 건 다 제쳐두었던 탓에 돌보지 못한 것들 투성이다. 성장기 아이가 골고루 자라지 못하고 한쪽 팔만 기이하게 자란 느낌이랄까. 나는 그런 어른이 되었다.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꿈을 쫓아 10대, 20대, 그리고 30대를 바쳐 달려온 외길의 끝이 고작 이거라니. 내게 주어진 능력이 고작 내 앞가림이나 겨우겨우 하는 정도라니. 이 나이가 되었을 땐,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휘황 찬란까지는 아니더라도 은은하게나마 반짝이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끝끝내 나는 보통의 내가 되어 보통의 하루들을 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쫓은 건 신기루였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여전히 매일매일 올림픽하는 마음으로 해가 뜨면 하루의 끝을 향해 달리기 바쁘지만,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망망대해 위에서 고장 난 나침반을 들고 열심히 제자리 뛰기 하는 꼴이다. 답을 알 수 없는 의문들이 늘어갈수록,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의가 들수록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초조함이 나를 휘감는다.


누군가 자신의 불행을 생각하지 않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바쁘게 사는 것이 최고의 신경안정제라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시간을 메워보지만, 그렇게 얻는 망각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내게는 답이 아닌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해결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목표한 바를 이루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금 더 살아보니, 내 조건에 맞는 가장 행복한 선택을 하는 것이 꿈이라는 말이 좀 더 정답에 근접한 것 같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과 날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좀 더 집중하며 사는 것이다. 무언가를 가지지 않아도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온전하고 완전한 내면이 꽉 찬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우선, 오늘을 이겨낼 힘을 길러볼 작정이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는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던 이해인 수녀님처럼,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나 안 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하루씩 음미하듯 살다 보면 언젠간 나라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


궤도 수정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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