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기억 속에서 반짝이는 것들
요즘은 문득 “언제 이렇게 괜찮아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보다 생각이 또렷해졌고, 감정 기복도 한결 안정적이다. 정말 글쓰기 덕분일까. 초등학생 일기장 같은 글이어도 좋아하는 것, 감사한 것, 소중한 것들을 계속 떠올리고 정리하다 보니 그 순간즐이 모여 나를 일으켜 주었다. 흐릿했던 기억들이 점점 선명해지고, 희미했던 감정들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이번에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려 했을 때, 잘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틈틈이 곱씹어 보니, 작은 기쁨들이 모여 더 깊고 의미 있는 행복을 만들어왔다는 걸 깨달았다.
기적처럼 내 이름이 불렸던 날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주는 시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너무 받고 싶었다. 그래서 두 눈을 꼭 감고 기도했다. 제발, 제발. 그리고 내 이름이 불렸다.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무대에 올라가 메달을 받을 때, 세상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끝없는 노력 끝에 손에 쥔 것들
치과대학에 합격했을 때, 국시를 통과했을 때, 그리고 전문의 자격증을 땄을 때. 그 순간마다 “드디어 해냈다” 는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오랜 노력 끝에 얻어낸 성취는 짜릿하면서도 묵직한 행복을 주었다.
내 손으로 고친 치아, 그리고 마법 같은 변화
계속 아프고 염증이 반복되던 치아가 신경치료를 받고 마법처럼 나아졌을 때, 말로 할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손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환자가 안도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소중한 사람들이 잘 되었을 때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좋은 소식을 전해 올 때, 그들의 기쁨이 내 것이 된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른다. 오랜 시간 힘들었던 사람이 다시 웃을 때,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나는 그들이 잘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을 느낀다.
한 지붕 아래 모인 가족들
가족들이 다 같이 한 공간에 있을 때, 설명할 수 없는 평온함을 느낀다. 꼭 특별한 일이 없어도 좋다. 각자 저마다의 일을 하다가도 문득 눈이 마주치면 웃음이 번지는 순간들. 그런 순간들이 내게는 소중하다.
몇 년 전, 나는 간절히 기도했었다. “내 삶은 마음대로 구워삶으셔도 좋으니,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을 살려주세요.” 그때의 나는 그만큼 절박했다. 가족이 무사하기만 하다면, 어떤 대가라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모든 것이 뜻대로 풀린 건 아니다. 가족이 아주 건강한 것도 아니고, 모든 일이 완벽하게 흘러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 있고, 함께하고, 큰일 없이 안정적인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하다.
안갯속에서 찾은 행복
이렇게 적어 내려가다 보니, 기억 속에 행복했던 순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걸 깨닫는다. 화려한 순간은 아니지만,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장면들이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조금 더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안개가 걷히듯, 희미했던 기억들이 하나둘 선명해진다.
행복은 늘 거창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때로는 조용히 스며들어, 지나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나는 지금도 그 조각들을 모으고 있다. 언젠가 더 많은 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