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견디는 것 외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 버티고 버티다 어느 순간 무너져 내렸다. 불안장애와 우울증으로 몸과 마음이 점점 만신창이가 되었다. 병원 다니며 약물치료도 받고, 상담도 받고, 도움이 된다는 건 다 해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도움 되지 않았다. 참담했다. 이렇게 망가진 채로 살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누굴 만나든 무얼 하든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늪 속에 가라앉은 것 같았다.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그 감정들과 씨름하며 다시 일상을 되찾기까지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이겨냈다고 생각했던 불안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물과 썰물처럼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걸 보며 깨달았다. 아 나는 불안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구나.
여전히 불안의 바다에서 살고 있지만, 조금씩 불안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다. 불안에 허덕일 때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주는 이들과의 대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불안이 사그라든다.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힘이 된다. 사랑은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진 않지만, 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나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 덕에 나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반면, 완벽주의와 후회는 독이 된다. 세상 어떤 인간도 완벽하지 않고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타인은 그렇게 너그러이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스스로에게는 왜 그것밖에 못 하냐는 질책이 앞섰다. 나쁜 일이 생기면 내가 저지른 어떤 잘못에 대해 대가를 치르는 중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쪼그라들었다. 모든 일이 다 내 책임은 아니었을 텐데 나는 늘 나를 몰아붙이고 다그쳤다. 나는 나에게 가장 가혹했었다.
후회는 의미 없는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도 어렵게 배웠다. 잘못했으면 바로 잡으면 되고, 잘 모르면 배우면 된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지만 다시 돌아가더라도 결국 똑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른다. 후회보다는 어머! 이게 아니네! 하며 천연덕스럽게 웃어넘길 수 있는 내공이나, 자신만만한 날에도 먼지가 되어 사라졌으면 하는 날에도 담담하게 이 또한 지나가겠지 할 수 있는 단단함을 가지려 애쓰는 편이 낫다.
지금도 매일 아침잠에서 깨면 힘을 내보자는 머리와 더는 그럴 수 없다는 마음이 싸운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날도 많다. 그럴 때는 예전처럼 허벅지를 꼬집으며 이를 악물기보다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먼 길을 가려면 생각보다 정신건강이 정말 중요하다. 존버는 답이 아니었다.
아무리 불안이 영원할 것 같은 날들 속에도 온 우주가 나를 빚어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분명 칠흑같이 어두운 곳이었는데 한 걸음 내디디니 그곳에 가로등이 켜지고, 또 한 걸음 내디디니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어준다. 이러다 죽겠다 싶다가도, 그래도 이 정도면 살만한 인생이지 않을까 싶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어 또 하루를 견디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