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오랫동안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습니다. 그 질문들 속에서 저를 탓하는 것이 차라리 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것은 제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선택이었고, 저는 그 선택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당신에게 사과를 받고 싶지도 않습니다. 사실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후회하든 하지 않든, 깨닫든 못 깨닫든, 그것은 더 이상 제 문제가 아니니까요. 저는 이제 당신이 제 삶에 미치는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더 이상 저를 짓누르게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회복의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분노보다는 평온에 가까워졌고,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졌습니다. 아직도 마음 한편에 씁쓸함이 남아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마저 희미해질 거라 믿습니다.
작은 바람이 하나 있다면, 당신이 저에게 했던 선택들이 언젠가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기를, 한순간이라도 괴로움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 감정에 머물지 않기로 했으니까요.
이 편지를 쓰는 지금, 저는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 삶을 더 가볍게, 더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마주칠 수도 있겠지요. 예전처럼 반갑게 웃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저 조용히, 짧게, 눈인사 정도는 건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용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은영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