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친구 말에 따르기로 했다.
1. 장래희망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꿈을 품고 있었다. 치과의사가 되고 싶었고, 동시에 배우가 되고 싶었다.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 이성과 감성의 양극단에 놓인 꿈들이었다. 처음엔 그 두 갈래의 길이 나란히 설 수 있다고 믿었지만, 성장할수록 그것들은 점점 멀어지는 듯 보였다.
치과의사는 계획 가능하고 안정적인 삶을 상징했다. 나는 조직의 수직적 위계 속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았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삶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내고, 눈앞의 사람을 상대하며, 하루의 일이 하루 안에 정리되는 삶이 더 끌렸다. 치과의사는 그 모든 바람을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직업처럼 보였다. 손기술로 심미적 결과를 만들어내며, 동시에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단지 이상적인 꿈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성과 현실의 질서 너머에는, 감성과 상상으로 가득한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나는 책과 영화를 사랑했다.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몰입했고, 때로는 그들의 삶을 대신 살아보기도 했다. 배우라는 존재는 그런 나의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통로였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수많은 타인의 삶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마치 또 다른 현실을 사는 듯한, 자유롭고도 깊은 매혹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혼자 손으로 만든 포트폴리오를 들고 오디션장을 전전했다. 누가 시킨 것도,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지만, 나름의 간절함으로 뚜벅뚜벅 나아갔다. 하지만 결국 방학이 끝날 무렵까지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 여름의 끝에서, 나는 배우가 아닌 평범한 대학생으로 다시 일상에 안착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이야기지만, 사실은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었단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사실을 나에게 전하지 않으셨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음 한편에서는 이미 치과의사가 되는 일이 더 ‘옳은 선택’이라며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치과의사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내가 바랐던 것 중 많은 것을 이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사람들의 통증을 덜어주고, 미소를 되찾게 도와줄 때면 내가 선택한 이 길에 확신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은 멈춰서 상상에 잠긴다.
그때 엄마가 아니라, 내가 전화를 받았더라면?
한 번쯤 더 용기를 내어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배우라는 이름은 더 이상 나의 현실이 아니지만, 그 꿈은 아직 내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아 있다. 마치 무대 뒤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불쑥 조명을 받는 순간을 기다리는 누군가처럼. 지금의 나에게 그 길은 닿을 수 없는 먼 무대일지도 모르지만, 그 상상만으로도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2. 기억나는 꿈
부활절을 맞아 꿈 이야기 한 번 해볼까.
지금은 신앙도 마음도 모두 흔들리지만, 한때는 신앙이 무럭무럭 자라나던 시절이 있었다. 삶은 단순했고, 믿음은 또렷했으며, 그 안에서 나는 조용한 안식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잊을 수 없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나의 보호자였다. 말없이 곁을 지키는 존재, 따뜻하고 묵직한 사랑으로 나를 감싸는 사람이었다. 나는 참 사고뭉치였다. 어떤 일을 어떻게 저질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의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청개구리 같은 아이였다는 것이다. 툭하면 사고를 쳤고, 끊임없이 말썽을 부렸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나를 야단치기보다 이해하려 했고, 품에 안기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어떤 큰일을 저질렀다. 정확히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실수는 아니었고, 나는 그 일로 인해 붙잡혀 벌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내 잘못이었고, 나의 책임이었다. 그런데 그가 말없이 그 자리에 나섰다. 아무도 대신 설 수 없는 자리에, 아무런 변명도 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나 대신 벌을 받겠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상황의 무게를 실감했다. 엉엉 울며 그에게 매달렸다. 우리 도망가자고, 어디든 멀리 떠나자고 애원했다. 나는 그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그가 사라지는 세계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깊고 슬픈 눈빛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도망가도 어차피 잡히게 될 거야. 너를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
그는 결국 모두가 다 아는 그 십자가에 못 박혔다. 마지막 순간,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피로와 고통, 슬픔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 있었다. 이 세상의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절박하고도 따뜻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내 몫까지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그 말은 한마디 유언처럼 내 안에 깊이 새겨졌다. 나는 꿈속에서도 엉엉 울었고, 깨어났을 때 베개는 눈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그 말은 나를 떠난 적이 없다.
그 몫까지 살아간다는 건, 도대체 어떤 삶일까.
그 질문은 내게 오랜 수수께끼가 되었다. 때로는 그 말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어떤 날은 그 무게가 너무 커 걸음을 멈추게 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 질문은 해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천천히 체득해 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대신 감당한 무게, 끝까지 놓지 않았던 사랑, 그리고 내가 여전히 붙들고 있는 그 눈빛. 그 모든 것을 마음 깊이 품은 채 살아가는 일. 넘어지고, 후회하고, 다시 일어나 사랑하려 애쓰는 것. 그게 어쩌면, 그의 몫까지 살아간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삶은, 결국 나 혼자의 것이 아닐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