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서야 시작되는 것들 (2025)

by 최은영

내가 한국에 돌아온 뒤 읽었던 많은 책들 중, 죽음과 삶을 떠올리면 이 열 권의 책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인생의 관문이지만, 단순히 끝이라고만 말하기에는 그 안에 삶의 본질과 의미를 탐구하게 만드는 무한한 질문들이 담겨 있다.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살아가는 이유와 가치를 돌아보게 되고,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죽음이라는 한계는 삶을 공허하게 하기보다 되려 더 깊고 충만한 삶으로 우리를 이끈다. 여기 소개하는 책들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피어난 통찰과 경험을 통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의 본질과 의미를 우리에게 전한다.


1. 죽음의 그림자에서 피어난 삶의 의미

나는 오래전부터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이야기들에 매료되어 왔다.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고통의 역사이지만, 그 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끈기와 인간다움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그 참혹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경외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그는 아우슈비츠라는 지옥 속에서도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인간 생존의 핵심임을 깨달았다. 이 책은 현대 사회의 불안과 허무 속에서도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는 통찰을 준다.


에디 제이쿠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은 또 다른 결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수용소의 끔찍한 기억 속에서도 인간애와 유대감을 통해 희망을 붙들었고, 고통이 행복의 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행복의 깊이를 만들어주는 배경이 된다고 말한다.


두 책 모두 깊은 어둠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희망과 존엄을 지켜낼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기록을 넘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삶의 의미와 용기를 되새기게 한다.


2. 예술과의 교감을 통한 치유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깊은 상실의 시간을 예술과 함께 통과한 한 남자의 섬세한 치유 기록이다. 저자는 형의 죽음 이후, 바쁘고 화려했던 더 뉴요커의 사무직을 그만두고 전혀 다른 삶을 택한다. 가장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장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 것이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직업 전환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형을 잃은 직후 어머니와 함께 찾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그는 예술 앞에 잠시 멈춰 서는 법을 배웠고, 그 고요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계속 앞으로만 달려야 하는 삶에서 잠시 벗어나, 아름다움 속에 머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살아남는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브링리는 경비원으로 일하며 매일 그림을 마주했고, 그 조용한 반복의 시간이 상실의 고통을 조금씩 흡수해 주었다. 예술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고통을 머금은 존재를 다정히 품어주는 공간이 되었다. 이 책은 예술이 우리를 다시 삶으로 데려오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증명한다. 상실 앞에서도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으며, 그 시작은 때로 침묵 속에서 온다.


3. 불완전한 삶 속에서 완전함을 찾다

술라이커 저우아드의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는 삶의 불완전함과 그 안에 깃든 아름다움을 정직하게 마주한 회고록이다. 저자는 백혈병 진단을 받고, 생존 가능성 35%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1,500일에 걸친 투병과 회복의 시간을 글쓰기로 기록했다.


그녀는 병을 이겨낸 후에도 또 다른 공허와 혼란에 맞닥뜨린다. 완치 이후의 삶이 곧 회복을 의미하지 않음을 깨달은 저자는 캠핑카를 타고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자신처럼 병을 겪은 독자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 여정 속에서 나눈 대화와 교감은 삶이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여전히 이어지는 축제임을 일깨운다.


이 책은 회복이란 과거로의 복원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도 살아내려는 몸짓임을 보여준다. 삶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엉망인 채로도 충분히 축제가 될 수 있음을 말하는 이 이야기는, 불완전한 삶을 견디는 모든 이에게 위로를 건넨다.


4. 죽음을 앞둔 성찰과 삶의 재발견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평생을 사회적 성공과 외적 기준에 따라 살아온 한 인물이 임종을 앞두고 겪는 내면의 붕괴와 통찰을 정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법관으로서 안정된 직업, 체면 있는 인간관계,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리며 살아왔지만, 병으로 쓰러진 후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이 얼마나 공허하고 위선적이었는지를 깨닫는다. 그는 "제대로 산 적이 없었다"는 진실 앞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타인을 이해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에 가까워진다. 이 작품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며,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통렬하게 직시하게 만든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신경외과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의 생명을 다뤄온 저자가,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직접 죽음을 마주하며 써 내려간 회고록이다. 그는 의사로서의 정체성과 시한부 환자로서의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한다.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던 위치에서 자신의 육체와 정신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며, 그는 생명을 단순히 연장하는 것을 넘어 의미와 사랑,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자 노력한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오히려 더 명료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결국 마지막까지 의사이자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톨스토이는 허위로 쌓인 삶의 껍질을 벗기고 본질에 다가서는 과정을 그렸고, 칼라니티는 삶의 끝자락에서야 비로소 도달한 절실한 생의 감각을 기록했다. 두 책은 각기 다른 시대와 배경을 지녔지만, 공통적으로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경계 앞에서 인간이 겪는 변화와 성찰을 담고 있다.


5. 삶의 유한함과 현재의 소중함

하야마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는 절망의 끝에서 다시 삶을 붙잡은 한 여성의 극적인 전환점을 담은 에세이다. 절망스러운 현실을 한탄하던 그녀는 스물아홉 생일에 정확히 1년 뒤, 라스베이거스에서 사치를 누리고 카지노 승부를 마지막으로 생을 마치겠다고 스스로 시한을 정한다. 그 목표를 위해 낮에는 파견사원으로, 밤에는 호스티스와 누드모델로 일하며 번 돈을 모았다. 그리고 그 1년의 끝에서, 그녀가 마주한 것은 기대했던 화려한 결말이 아니라 뜻밖의 깨달음이었다. 이 책은 절망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새로운 시작의 힘을 보여주며,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고사카 루카의 ⟪남은 인생 10년⟫은 난치병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주인공 마쓰리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그린 소설이다. 발작과 통증이 덮쳐오는 순간에도 삶을 놓지 않으려 애쓰고,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레이코의 흔적을 마음에 새기며 버킷리스트를 채운다. 그렇게 그녀는 웃고, 울고, 사랑하며, 남은 시간 속에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새겨나간다. 작가 역시 동일한 병을 앓고 있었고, 이 책을 완성한 뒤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남긴 이야기는 죽음을 준비하는 기록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온전히 살아내려 한 흔적이자, 순간을 진심으로 통과한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따뜻한 증언이다.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인물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끝이 있기 때문에 더 선명해지는 순간들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사랑과 존재의 의미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놓치고 있는 삶의 본질일지 모른다.


6. 고통 속에서 삶을 다시 선택하다

최지은의 ⟪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는 말기 암이라는 벼랑 끝에서 삶을 다시 붙든 한 사람의 고백이다. 저자는 암 진단과 함께 시한부 선고를 받고, 일상과 커리어, 미래에 대한 모든 계획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그는 절망에 주저앉는 대신,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스스로 선택하며 인생의 중심을 재구성해 나간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게 된 여정을 따라간다. 두려움과 고통, 무력감에 휩쓸리는 시간을 지나, 저자는 “결말이 정해져 있어도 삶은 선택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7. 부조리 속에서 피어난 연대와 희망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죽음과 삶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탐구하며,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연대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흑사병이 퍼지는 오랑시를 배경으로, 카뮈는 인간이 불가피한 죽음과 고통 앞에서 선택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카뮈는 우리에게 묻는다. 죽음이 필연적인 인생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는 답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조리를 인정하되, 삶의 순간들을 사랑하고, 서로를 돕는 것이라고.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들을 읽으며, 문득 내 삶의 끝자락을 상상해 보게 된다. 마음은 여전히 또렷하고 청춘 같은데 몸 여기저기가 하나둘 나를 배신하기 시작할 때,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억울함이 먼저일까, 아니면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이 밀려올까.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은 조바심과 안쓰러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지만, 정작 그 시간을 통과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끝내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부류의 책들을 더욱 가까이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들은 지금 살아가는 순간의 귀중함을 일깨우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사유를 건넨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삶을 온전히 누리라는 메시지가 작품들을 관통한다.


죽음은 삶의 의미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준다. 그 앞에 설 때, 우리는 더 충실히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얻게 된다. 결국 죽음은 우리를 멈추게 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삶이라는 축제를 끝까지 누리도록 이끄는 스승이다. 삶과 죽음은 서로를 비추며,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삶을 선택하고 사랑할 이유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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