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함께 한 10년 (2025)

by 최은영

더는 내려갈 곳이 없다고 믿었던 바닥 그 아래에도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쌓아 올렸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허우적거리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새 수면 위에 올라와 있었다.


참고 견디는 것 외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 나는 끝내 무너져 내렸다. 불안과 우울증으로 몸과 마음은 점점 엉망이 되어갔고, 병원을 다니며 약물치료도 받고 상담도 받아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결정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다. 참담했다. 이렇게 망가진 채로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마음을 서서히 잠식해 갔다. 누굴 만나든, 무얼 하든,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나는 점점 더 깊은 늪 속으로 가라앉았다.


불안이 밀려올 때면 얼음땡 놀이가 떠올랐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겠지만, 속은 삽시간에 얼어붙어 사고가 멈추고 감정은 제어할 수 없었다. 때로는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럴 땐 긴 의자에 앉아 창밖의 뒷산을 바라보곤 했다. 창틀에 턱을 괴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다 보면, 이따금 살랑이는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이제 괜찮아.’ 말없이 불어오는 바람은 그렇게 잔잔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오랜 시간 불안과 우울 속에 머물다 보면, 그 감정이 마치 내 마음의 기본값처럼 굳어진다. 기쁜 일이 찾아와도, 행복이 잠깐 스쳐 지나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두 번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감정들과 싸우며 일상을 되찾기까지는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이겨냈다고 생각했던 불안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물과 썰물처럼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걸 보며 깨달았다. 아, 나는 불안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구나.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한 걸음 내디디면 세 걸음 뒤로 밀려나는 되풀이의 연속이다.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해 줄 기적 같은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기억해 둘 만한 요령 하나가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 가만히 있으면 생각은 꼬리를 물고, 불안은 자라난다. 움직임에는 그 끝없는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는 힘이 있었다. 산책을 하거나 방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뒤엉킨 마음이 차츰 진정되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어딘가에 몰입하는 것이 도움이 됐다. 나는 레고나 퍼즐을 맞추고, 명화를 색칠하며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을 하나씩 정돈해 갔다. 몰입의 시간이 쌓이면 처음엔 안개처럼 흐릿하던 머릿속이 점차 맑아졌고, 억지로 의지를 짜내지 않아도 다음 할 일을 자연스레 이어갈 수 있었다. 일상 속에 흐름이 생기고, 그 흐름이 차오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불안 속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얼어붙은 나를 녹이는 힘이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었다. 속은 무너져 내리는데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척 평정을 지키려 애쓰다 보니 되레 더 고장 난 사람이 되어버렸다. 필요한 건 강한 척이 아니라, 내 마음을 부드럽고 너그럽게 다루는 일이었다. 나쁜 일이 생기면 전부 내 탓 같았고, 작은 실수조차 좀처럼 용서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내 책임일 수는 없었고, 후회란 생각보다 무의미했다. 잘못했으면 바로 잡으면 되고, 모르면 배우면 되는 거였는데 나만큼은 내 편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를 구해낼 힘이 내 안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과, 그 모든 과정을 혼자 견뎌야 한다는 건 다르다. 혼자 싸우면 쉽게 지치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고, 세 겹으로 엮인 줄은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내 안의 중심을 지키는 힘을 키우는 것은 분명 나의 몫이지만, 그 힘이 바닥나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는 존재들이 필요하다. 우산이 되어주는 이들이 내어주는 그늘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 보면 격해졌던 감정은 가라앉고, 멈췄던 사고는 흐름을 되찾았다.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진 못해도, 내가 그것을 해결할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버틸 힘을 얻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지옥 같을 땐, 나보다 먼저 그 어둠을 통과한 이들을 떠올렸다. 에이브라함 링컨,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 뭉크, 프리다 칼로, 헬렌 켈러, 호라시오 스패포드, 등등. 모두 저마다의 고통을 끌어안고, 깊은 어둠 속을 버텨내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사람들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그들이 어떤 시간을 축적해 왔는지, 어떤 방식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왔는지 따라 걷듯 바라보게 된다. 그들의 삶은 내게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위로가 되었다. 나도 언젠가, 나만의 어둠을 그렇게 통과하고 싶었다.


지금도 종종, 힘을 내보자고 말하는 머리와 더는 그럴 수 없다고 외치는 마음 사이에서 실랑이를 벌이며 아침을 맞는다. 아침 30분은 방어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시간이라 했던가.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이 가장 쉽게 드는 때. 그래서 그 생각을 빠르게 밀어내야 하고, 어떻게든 에너지를 끌어올리야 한다. 하지만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 날에는 예전처럼 허벅지를 꼬집으며 이를 악물기보다,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먼 길을 가려면 정신건강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존버는 답이 아니었다.


아무리 끝이 보이지 않는 날들이 이어져도, 온 우주가 나를 빚어주는 듯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분명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는데, 한 걸음 내디디니 가로등이 켜지고, 또 한 걸음 내디디니 누군가 손을 내민다. 이러다 죽겠다 싶다가도, ‘그래도 이 정도면 살 만하지 않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어 또 하루를 견뎌낸다.


지금의 나는, 나를 무너뜨렸던 시간들마저 소중하다. 불안과 우울은 여전히 내 일부이지만, 그것이 더 이상 내 전부는 아니다. 주저앉아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삶을 지켜내며 생기를 다시 불어넣을 힘이 내 안에 있음을, 그렇게 내가 생각보다 강인한 사람임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평범하고 때론 지루하기까지 한 하루하루를 온전히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고요한 물 위에 떠 있는 지금, 아직 완전히 익숙하진 않지만 이 부유함이 불안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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