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형 인간의 하루살이 (2025)

by 최은영

정각에 한 번, 20분 뒤에 또 한 번, 알람이 두 번째 울릴 때쯤 간신히 눈을 뜬다. 아침에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던가, 평생 아침형 인간이 될 수는 없겠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지,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소노 아야코의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침은 마법 같은 환상이 펼쳐지는 시간이다. 희망이라는 평범한 가슴 설렘이 모든 이의 가슴에 근거 없이 들이닥친다. 특별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도 분명 어제의 연속일 따름이다. 그러나 아침은 아침이라는 것만으로도 무조건 밝다. 사람은 어제와 똑같지만, 아침은 아침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이 부분을 책에서 북 찢어 방문에 붙여놓기까지 했다. 아침을 조금은 다르게 맞이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그러나 매일 눈을 뜰 때마다 결국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시끌벅적한 노래를 찾아 틀어놓는 것이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반쯤 감긴 눈으로 화장실로 향한다. 찬 물이 피부에 닿는 순간에야 정신이 든다. 씻고 나서는 눈에 띄는 대로 혹은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찾아 입고, 화장이라기엔 너무 약소한 화장을 한다. 수분크림, 선크림, 아이라이너 정도. 좀 더 여유가 있는 날에는 눈썹도 그리고 아이섀도와 틴트도 바른다. 옛다 기분이다, 하는 느낌으로. 그리고 아침밥을 먹는다. 메뉴는 보통 삶은 반숙 계란, 토스트 한쪽, 사과 두세 조각이다. 서둘러 양치한 뒤, 전날 내려놓았던 가방을 다시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쓰고 보니 출근 준비하는 모습이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다.


직장에 도착하면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픽업한다. 잠 깨는 데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쓴 맛만 한 것이 없다. 목을 축이며 일하는 층으로 이동해서 옷을 갈아입는다. 사실 화장을 최소한으로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갈아입으면서 화장이 옷에 묻어나는 게 싫어서다. 머리는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흘러내리지 않게 일명 똥머리로 질끈 묶어버린다. 예약표와 차트를 리뷰하고 전투하듯 일하고 나면, 퇴근할 때쯤엔 방전 상태가 된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사회, 관계, 책임감 속에 수많은 가면을 쓴다. 맡겨진 몫을 다하며 하루를 보내고 나면, 몸은 지쳤는데도 마음은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일터를 벗어나도 낮의 긴장은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정작 내가 원하는 일을 해볼 여유는 남지 않는다. 그래서 곧 아침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밤이 깊어질수록 세상은 조용해지고, 그 속에서 나는 비로소 혼자가 된다. 낮에는 밀어두었던 감정들이 하나둘 올라와, 마치 책상 위에 흩뿌려진 종이처럼 차례로 나를 향해 다가온다.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그 흐름 속에서야 비로소 숨기지 않은 내 얼굴이 드러난다. 밤은 내게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다. 누구도 바라보지 않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순간. 책상 앞에 앉으면 낮에는 닿지 않던 생각들이 줄을 서듯 찾아온다. 글자와 그림, 사소한 낙서까지 손을 타고 흘러나온다. 책 몇 장을 넘기거나, 음악을 틀어놓거나, 노트북에 삼킨 말을 옮겨 적다 보면, 하루의 무게가 풀리듯 가벼워진다. 이 시간 덕분에 나는 다시 숨을 고르고, 내일을 버틸 힘을 얻는다. 책 속 한 문장, 음악의 울림, 노트에 남은 몇 마디가 다음 날의 나를 조금씩 달라지게 한다. 낮이 벅찰수록, 밤 시간은 더없이 귀하다.


고요한 밤은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의 벗이었다. 반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에서 낮에는 담기지 않는 감정의 깊이와 색채를 불러내며,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밤은 낮보다 더 풍요로운 색을 지녔다”고 고백했다. 소로는 《월든》에서 달빛에 빛나는 호수와 숲의 적막 속에서 가장 순수한 평화를 느꼈다고 적었고, 풀벌레 소리와 작은 울음마저 사색의 벗이 되었다고 썼다. 헤세는 《밤의 사색》에서 불면의 시간을 고통으로만 보지 않고, 오히려 영혼이 자라나는 성찰의 순간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밤은 창작과 사유의 근원이었다. 낮의 소란이 거둬진 뒤에야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을 수 있으니. 수십, 수백 년 전의 예술가들과 같은 밤을 바라보며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주 앉아 있는 듯한 낭만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아무리 길게 늘여도 밤은 결국 새벽에 닿는다. 자유와 고요 속에서 단단해진 마음을 품고, 아침이 밝아오면 다시 책임의 시간으로 걸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제 자야 한다. 정말로. 이제는. 내일 출근을 위해서, 실수 없는 하루를 위해서.


오늘도 어김없이 아쉬움을 안고, 밤에게 이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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