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잣대나 타인의 시선에 상관없이 내 안에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인가?"
양치를 하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아마 조금 전 들었던 스티븐 콜베어와 앤더슨 쿠퍼의 대화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은 CNN 팟캐스트 All There Is with Anderson Cooper 시즌 1, 2화 〈Stephen Colbert: Grateful for Grief〉(2022.9.21)에서 자신들의 상실과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는지 솔직히 나누었다.
콜베어는 열 살에 아버지와 두 형을 비행기 사고로 잃었고, 쿠퍼 역시 같은 나이에 아버지를 심장마비로 떠나보냈다. 공통된 상실 위에서 콜베어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가장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던 일조차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선물이고, 존재와 함께 고통이 따른다. 그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그러나 삶에 감사한다면 그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 나는 어린 나이에 고통을 겪었기에, 훗날 친구나 아내, 아이들과 진지한 관계를 맺을 때 ‘모두가 고통 속에 있다’는 이해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서툴지만 그들의 고통을 인정하고, 그들과 연결되며, 깊이 사랑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내가 겪은 고통에조차 감사하게 된다. 다른 이들의 아픔을 알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능한 한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은 내가 원치 않았던 일들까지도 인정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일들이 내게 선물이 되었음을 감사하는 데 있다.”
콜베어의 이 고백은 역설 같지만, 그의 삶을 관통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상실을 단순히 불행으로만 규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실이 자신을 더 깊게 만들었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단단하게 다지고, 타인을 더 다정하게 바라보게 하는 밑거름으로 여긴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기쁨과 환희뿐 아니라 슬픔과 상실까지 끌어안는 일이며, 그 전체를 감사할 때 비로소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슬픔은 누구나 겪는다. 하지만 그 감정을 품에 안고 삶의 언어로 번역해 낸 사람만이 얻는 깊이가 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성취에 집중하지만, 사실은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이야말로 한 인간을 사람답게 만든다. 콜베어와 쿠퍼의 대화는 삶에 새겨진 슬픔을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까지 생각 정리를 하고 보니, 내가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내가 살아낸 지난날들이 아닐까 싶다. 내게도 온 힘을 다해 버텨낸 계절들이 있었다. 밤마다 울음을 삼키며 마음을 다잡던 순간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옳다고 믿는 방향을 향해 고분고투하며 걸어간 시간들, 가장 초라했음에도 끝내 무너지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비극이거나 의미 없이 흘러간 시간일지 몰라도,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세상이 정한 기준으로는 화려한 수식어도,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이력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나온 시간 속에서 사랑하는 법, 단단해진 마음, 다정함, 견디는 힘, 그리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용기를 길러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살아온 날들로부터 받은 가장 큰 선물이자 내 안에 남은 가장 귀한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