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마텔의 소설 《라이프 오브 파이》를 몇 주째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고민했다. 살까 말까, 한글로 살까 영어로 살까, 종이책으로 살까 전자책으로 살까.
이 책을 처음 본 건 고등학교 도서관이었다. 유학 가서 가장 고역이었던 건 점심시간이었다. 카페테리아에서 삼삼오오 모여 밥 먹는 아이들 사이에서 혼밥 할 용기가 도무지 나질 않았다. 맛도 없고 돈도 아깝고. 그래서 찾아낸 도피처가 도서관이었다. 영어를 더듬더듬 읽을 때였지만 책에 둘러싸여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러다 새 책 코너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본 것이다.
호랑이와 소년이 그려진 표지에 이끌려 몇 페이지 읽다 관뒀다. 별 흥미 없던 책이라는 인상이 남았다. 그런데 요즘 온라인에서 자꾸 언급된다. 장 안의 화제인 배우 박정민 씨가 연극을 해서일까, 아니면 정말 내용이 감명 깊기라도 한 걸까. 왠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나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과 비슷할 것 같은데.
꾸준히 오래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표지만 봐도, 줄거리만 들어 봐도 '안 봐도 뻔한 이야기'라는 편견이 생긴다. 슬프게도 그 촉이 맞을 때가 많지만. 그 편견을 넘어 오늘 드디어 종이 원서를 샀다. 읽고 나면 나도 이 책에 대해 논할 수 있게 되겠지.
며칠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다. 이 책도 몇 년째 겨울마다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오늘은 설국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날이 있다. 미루던 일을 해야만 하는 '오늘이 그날이야' 싶은 날.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첫 페이지엔 언제 그었는지 모를 밑줄이 있었다. 유명하다던 그 문장이었다. 다 읽고 나서는 슴슴한 내용의 이 책이 왜 특별할까 곱씹다가, “한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정서가 짙게 배어 있는 훌륭한 작품일수록 번역이 힘들다”는 번역가의 주석을 보고 이해가 갔다. 분명 내가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었다. 두 번, 세 번 읽다 보면 깨닫게 될까? 아니면 도쿄에서 《설국》의 무대인 니가타 유자와로 가는 '설국열차'를 타고 여행을 다녀오면 알게 될까?
몇 년을 묵혀두다 오늘이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그날이다 싶어 펼쳐 든 《설국》처럼, 오늘 구매한 《라이프 오브 파이》 역시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펼쳐 들 어느 날을 위해 책장에 꽂아 두기로 했다. 결국 책은 이미 사둔 책 중에서 지금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