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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가보 마테는 가보 마테의 《정상이라는 환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트라우마란 우리가 경험한 일이 아니라, 그 일을 겪으며 우리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오래 묻어두었던 감정이 천천히 떠올랐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던 불안, 사람들 속에서 느껴지던 미묘한 거리감, 그리고 “나는 왜 늘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을까”라는 질문. 어쩌면 그 모든 감정의 밑바닥에는, 이름 붙이지 못했던 단절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다. 도시가 바뀌고, 학교가 바뀌고, 언어가 바뀌었다. 한 도시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다시 짐을 쌌고, 교실 공기의 온도에 적응하기도 전에 교복이 달라졌다. 친구에게 마음을 붙이려 하면 작별인사가 먼저 찾아왔다. 늘 시작점에 있었고, 늘 이방인이었다.


어른들이 보기엔 나는 씩씩한 아이였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도 곧잘 적응했고, 새로운 질서에 맞춰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건 강함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웠다. 잃어버릴까 두려워 미리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운 결과였다. 적응은 빨랐지만 얕았고, 익숙함은 늘 짧았다.


그 반복은 자라면서도 계속되었다. 외국에서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언어는 또 낯설어졌고, 익숙했던 체계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배웠던 지식이 통하지 않을 때, 쌓아온 시간이 무용해 보일 때, 마음속 어딘가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익숙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덜 힘든 것은 아니었다.


가보 마테는 또 말한다.


“트라우마는 사건이 아니라, 연결의 단절이다. 자신과, 타인과,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트라우마는 바로 그 ‘단절’에 있었다. 계속 바뀌는 환경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의 연결을 조금씩 놓쳤다. 사람과 가까워지는 일은 두려웠고, 안정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늘 따라다녔다. 그래서 더 완벽하려 애썼고,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불안은 결함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던 셈이다.


감정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사람과의 이별은 공부나 진로의 변화보다 더 깊은 침묵을 남겼다. 일상은 계속되었지만, 어딘가에 균열이 생겨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여러 번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것은 회복이라기보다 재건에 가까웠다.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적은 없었다. 낡은 벽을 허물고, 바닥부터 다시 세우는 일. 서두르지 않고, 완벽을 기대하지 않고, 천천히 생기를 불어넣는 일.


그 변화를 자각하게 된 것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였다. 머릿속의 잡음들을 문장으로 옮기며 나는 비로소 내 안의 패턴을 마주했다. 예민함이라 생각했던 감정은 오래된 경계심이었고, 멈출 줄 몰랐던 조급함은 안정에 대한 갈망이었다. 불편한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바라보는 일, 그것이 나의 회복의 시작이었다.


나는 여전히 회복의 여정 속에 있다. 무너졌던 자리에도, 버려진 듯했던 시간에도 다시 생기가 스며드는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주 조금씩 달라진다. “치유는 진정한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그의 말처럼, 그 연결의 감각이 내 안에 천천히 돌아오고 있다.


트라우마는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는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나를 설명하는 언어이자, 내가 걸어온 시간을 이해하게 하는 맥락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은, 연결이 끊긴 세계 속에서도 다시 나 자신과 이어지기 위해 계속해서 복구해 온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지금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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