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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Jun 23. 2023

나만의 속도로 걸을 결심

내가 사는 곳 근처에서 근무하는 선배와 점심약속이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이사 가기 전에 인사드리러 왔어요.”

“그랬구나. 어디로 이사해?”

“좀 멀리 가요.”

“혼자 가는 거야?”

“아니요, 가족들하고 같이요.”

“어머, 이제 독립해야지!”

“하하 그러게요.”


멋쩍은 듯 웃어넘겼지만 좀 전에 맛있게 먹은 돈가스가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도 부끄러워해야 하는 나이인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은 선배가 모르는 게 있다. 열다섯에 부모님 품을 떠나 오랜 타지생활 끝에 서른이 넘어 이제 막 가족 곁으로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부모님은 내가 떠날 때의 부모님처럼 젊고 건강하지 않으시다는 것, 그래서 내가 필요하다는 것.


점심시간의 끝이 다가오는 마당에 선배를 붙잡고 “그게 아니고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요,” 하고 구구절절 내막을 다 설명할 수는 없었다.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는데 설명한들 뭐가 달라지겠나 싶어 입을 다물고 쿨한 척해보지만 생각은 멈출 수가 없다. 선배와 헤어지고 돌아와 나이에 맞게 산다는 건 어떤 걸까 고민해 보았다. 그 모습에 부합하는 내가 되면, 그다음엔 어떤 내가 되어야 하는 걸까. 그럴듯한 구색을 맞추기 위해 끝없이 도장 깨기 하듯 사는 게 정말 행복해지는 길일까.


언젠가 동료 의사의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이 있었다. 그분은 마흔다섯에 결혼을 하시는데, 누군가는 그 나이에 세 딸아이의 부모가 되어있고, 누군가는 그 나이에 이미 결혼 이십 년 차랬다. 같은 나이, 다른 속도, 다른 방향. 우리가 사는 모습은 다 같으면서도 다 다르구나 싶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타임라인에 따라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나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주변 사람들도 결국은 그들 자신만의 속도로 그들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최선을 다 한 하루하루들이 모여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있게 했으니 굳이 타인의 시선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거라고 믿기로 했다.


오늘 생각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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