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다를 땐 도망쳐.
그렇다 나에겐 25년은 꽤 억울함이란 키워드로 나를 표현할수 있다.
그 많고 많은 단어 중. 억울하다라는 다소 10%의 분노와 90% 애환의 단어
뜻대로 되는건 하나도 없다.
내가 찾았던 사랑이, 건강상 그리고 철 없는 상대방의 집안 가족 때문에 엎어질 줄 몰랐고.
다시 내려오고 싶지 않았던 경남 창원을 내려왔다.
그리곤 4월달 AI 강사로 첫 발을 내딛었고,
내 몸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학생들에게 일관된 강의를 펼치지 않는 내가
보기 싫었다.
그래서 3개월 인턴기간 종료가 됨에 더 이상 연장은 하지 않았다.
샤바샤바 해서 충분히, 연장 할수 있었겠지만,
선이 높았던 나는 내 행동이 올바르지 않음을 인지하고
그렇게 순진한 나는 그만 두었다.
그리고 난 지금까지는
발버둥을 쳤다.
여행이라는 이름하에
나는 나를 찾으러 해메었다.
집을 나가기 싫었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 가서 방황하는 나를 잠시만 잊고 싶었다.
그렇게 처음 가본 지역들을 돌아다녔다.
버컷리스트에 언젠가 적어 두었던 국내여행을
7월 부산 영도, 6월 경남 진주 8월 경북 영해, 대구 9월 경남 통영 9월 경북 영해
이렇게 참 목적 없는 느낌의 여행을 돌아다니다가.
여행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느낌을 받고는
손에 잡히는 문구형태로 질문지를 만들었다.
사업계획서라는 것도 제대로 적어보고 PPT도 해보았다.
억울했다.
내가 서울에서 결혼하여서 애기를 만들지 말지 고민해야 한다 라고 예측했던 결과는
아예 다르게 원래 사는 곳으로 내려왔고,
이젠 누구를 믿지 않아야 겠다라고 생각하는 지금이 되었단 말이다.
결혼 못한 마음이 나를 뒤엉켜 애환을 만들어냈고
화를 겹겹히 쌓여만 갔다.
그 속에 외로움, 두려움, 아픔, 속상함 감정이 둘레 돌돌 말려있고,
더이상 할수 없을꺼라는 무기력, 무력감의 본질이 남아 있었다.
올해 단어 억울.
지금도 오늘도 억울할테지만, 글로서 나를 평편하게 만들고
그 위에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살짝 열어 놓고
다시 찾아가야지 뭐 별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