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부터 나는 책임만 졌구나.
세상에 요즘 엄마와 같이 여행간 사람들이 많아진걸 느낀다.
그러면서 엄마를 껴안고, 집안을 껴안는 사람.
나에겐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낀다.
나 역시도 가족과 함께 좋은 마음으로 여행을 간 적도 있고,
엄마와 함께 카페를 가기도 했으며,
제주도 여행, 분위기 좋은 카페 등등 많이 다녔다.
안 다닌건 결코 아니다.
이건 집 분위기가 좋을 때 엄마를 이해 아니 인정하게 되고
엄마 안에 있는 7살짜리 친구와 같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재개발 되기로 한 집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당장이라도 이사를 가지 않은 엄마가 아빠를 원망하고.
집안을 다 원망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대출도 나오지 않는다는걸 알았을때
엄마의 히스토리는 다시 재발하였다.
1억원 대의 집을 가고 싶으면 가야지 가면되잖아
라고 말해봤지만, 아빠 눈치를 보고 가지 않았고
결정을 짓지 않는 아빠. 무조건 반대만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은 절대 지지 않는
아빠, 엄마의 뒷모습.
그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집에 있는 나에게 풀었다.
나와 이야기 하고 싶었다면서 서운함을 털어 놓는 엄마에게
고스란히 방어 태새를 갖추고 말했다.
' 엄마 나 어릴 때 내가 뭐가 힘들다. 이거 같이 해줘.
하다못해 어디가 아픈데 라고 말하면 그건 젊으니까 금방 나아.
라며 말했고 얼마전 자궁 혹 관련 수술역시도 나혼자 알아보고 했었다.
급작스럽게 말이다.
보험료 그래 나는 보험료를 받겠다라는 생각으로 하지 않았지만
그 보험료는 엄마가 알아보고 다 받게 해줬다.
전혀 내가 원한건 보험료가 아닌데
수술한 한지 일주일이 지나서도 피가 흥건하게 나오는걸 난 몰랐기에
계속 침대커버는 붉게 물들어가는 나날이였다.
이걸 하나부터 열가지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젊으니까 괜찮아.
맞다. 그럴 수도 있다.
신체적 나이는 내가 엄마보다 젊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아픈건 아픈거고, 아플때마다 아니 상의하거나 해야하는 순간마다
우리집에 어른에게 말하지 못했다.
이게 커서 문제가 있다는걸 알았다.
아니 만 35세의 나이에 알게 되었다.
가스라이팅을 하던 엄마와
집안일에 항상 한발자국 뒤에 있었던 아빠.
무조건 책임은 너가 져야 한다고 외치던 엄마.
책임은 그냥 집에 돈 버는거다 라고 생각한 아빠.
(... 돈은 모았지만 항상 아픈걸로 다 터져서 그닥... )
이 집안에서 나는 한시라도 빨리 나와야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랬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난 그렇게 감정 쓰레기통이자, 책임만 부여받는 그 첫째 였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