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폭력 상담소 상담 사실확인서에 적힌 내 가족의 이름들을 보며'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다이나믹한 인생이었기에, 항상 회고록을 남겨보고 싶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겪은 일들이 주변 사람들이 실화가 맞냐며 물을 정도였고,
'영화나 드라마 같다, 책을 써봐라' 등등 얘기를 듣기도 했고 스스로도 '그래볼까?' 생각해 봤지만
다른 일들에 미루고 귀찮아하며, '누군가 알아보면 어떡하나 나를 안 좋게 보지는 않을까?'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디어 글을 적어본다.
글을 적으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예전부터 그리고 최근까지도 내가 힘들 때, 가장 나에게 도움이 된 것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경험담과 공감이었다.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낸 이들을 보면, 공감이 가면서 그럼에도 용기 내어 자신의 아픈 부분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용기에 나도 다시 한번 힘을 내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이해 안 가는, 그저 부정적인 글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나 살아갈 힘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본다.
이야기의 시작을 하려면 기억 저 편에 묻어두었던 나의 유년시절부터 꺼내봐야겠다.
(부모님의 정보는 어렴풋이 기억이 나서 살짝은 부정확할 수 있으나)
부모님의 만남은 엄마를 마음에 들어 했던 아빠와의 소개팅을 시작으로, 혼전에 내가 생겨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나.
당시 엄마는 4남매의 장녀였고 집안에 보탬이 되기 위하여, 금은방을 운영하던 아빠와 결혼하였다고 하셨다.
(집안의 보탬이라니 지금 시대에는 잘은 이해 안 되지만, 후에 엄마는 나에게도 그런 결혼을 원하는 뉘앙스였다.)
그렇게 연년생 남동생과 함께, 온 가족이 아빠의 가게에 붙어있는 1.5룸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살던 곳인지는 모르겠다.)
나의 3살 이전 기억은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안 나는 건지, 내 머릿속에서 스스로 지운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빠가 온 가족에게 시사프로그램에 나올 만큼 심각한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
어렸던 나는 아이답게 자라지 못하고 애어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왔다.
지금의 MBTI가 나오기 전 혈액형으로 성격을 나누던 시대에서, B형이던 나는 단 한 번도 B형이냐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A형이냐고 할 정도로 집안에서의 긴장감은 나를 소극적인 성격으로 억누르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수면장애가 있는데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동생을 챙기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었다. 동생이 3살 이전부터 아이라 이를 갈 수도 있는 건데,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자다 보니 더 잘 들렸던 탓일까. 자던 중에 동생이 이를 갈면 아빠의 두꺼운 손이 작은 얼굴의 뺨을 여러 번 내려쳤다.
엄마와 나는 놀라서 말려보곤 했지만 감당이 되지 않았고, 당시 동생을 매일 팔베개해주며 아꼈던 나는
먼저 잠들지 못하고 동생이 자다가 이를 갈면 곧바로 턱을 잡아 소리를 못 내게 하였다.
그 당시 마음 편히 못 잤던, 어린 시절의 내가 안쓰럽다.
현재의 나는 매일 밤 수면제를 복용하며 잠을 청하지만, 혼자인 지금이 가끔은 미친 듯이 우울하고 외롭지만 그 시절보단 행복하다는 것을 이 글을 적으며 느낀다.
답답할 수도 있지만 조금씩 변화해 가는 나의 이야기로,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