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각

새로운 구원

by xohee

학생 때 상담받은 것 이후로 성인이 되어 자발적으로 상담센터를 찾아간 것은 처음이라서 걱정이 되었다.

우선 당시 상담센터가 많지도 않았고, 근처에 괜찮아 보이는 곳도 거의 없었다.


그나마 나아 보이는 한 곳을 예약하여 갔다. 생각보다 너무 깔끔하고 정돈이 잘 된 작은 센터였다. 처음 상담을 받은 나는, 상담 선생님을 일찍 만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생길 정도였다.

현재까지 여러 번 상담을 하였지만, 내가 너무나도 힘들었을 때 전혀 생각하지 못한 시각으로 보게 해 주시고, 진심으로 경청해 주시고 다정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해주신다.


처음 상담은 '엄마의 안부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에 대해서였다. 나는 그동안의 성장과정과, 가족과 있었던 이야기와 현재 상담센터로 오게 된 이유까지 다 말하였다.


내 얘기를 들으시던 선생님은 눈시울이 붉어지시더니, 티슈로 눈물을 닦아내셨다. 처음 본 사람에게 공감해 주시고, 감정 이입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내 남자친구라는 사람은 피곤하다고 내 옆에 누워서 눈을 감았는데 말이다.


말을 이어가던 나는, 정작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던 것 같다. 이제 가족 얘기는 남에게 해도 눈물이 안 날 정도다.


내 얘기를 다 들으신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가족 관계에서 나만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니 그랬다.

항상 모든 관계에서 나만 애쓰고 있었다. 아닌 걸 알면서도. 그 모든 원인이 가정에서였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남들은 20살이 되어 첫 사회생활을 하고 인내심을 배워나가는데, 나는 너무 어릴 때부터 인내하고 살아서 한계가 와서 바닥이 난 것이라고 하셨다. 더 이상의 에너지가 없다고.


그 말을 듣고 나니 맞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 때문에 항상 눈치 보고 참고 살았다. 커서도 동생 때문에 화가 나고 엄마 때문에 참고 살았다.


인생을 누군가 객관적으로 짚어주니 '이게 뭐지? 어떻게 산 거지?' 싶어서 눈물이 났던 걸로 기억한다. 누군가들은 내 얘기를 들으면 말한다.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하지만 이내 나를 한심하게 보기도 한다.)


나는 정말 살아있는 게 기적인 걸까?


일단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당장 여러 생각을 할 여유도 에너지도 없으니. 당시 나의 고민은 '엄마와 연을 끊고 싶은데, 키워준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당장 끊지 못하는 게 스트레스" 였었다.


선생님께서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셨다. 물론 나를 위한 말이겠지만.

그동안 내가 해온 가사노동을 시급으로 환산하면 동생이 낸 생활비보다 더 많다고.

깨달음을 얻은 느낌이 들며,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집안에서 내 노력은 당연한 거였구나.

그럼 난 대가를 치렀으니, 마음 편하게 연을 끊어도 되겠다 생각을 했다.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다.

이전 03화풀리지 않는 마음